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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음악평론가 이종학과 나눈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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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ERS OF LISTENING. 어떻게 들을 것인가.

이종학 음악평론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재즈 느와르 인 도쿄>, <사운드 오브 블루 아이즈 : 매킨토시 스토리> 외 소설가이자 작가, 칼럼니스트

GQ 처음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시작점은 어떻게 될까요?
JH 아버님이 영화광이었어요. 덕분에 일찍부터 집에 TV가 있었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1950-1960년대 미국 영화를 많이 접하게 됐어요. 당시 미국 영화에는 재즈 음악이 많이 나왔거든요? 영화를 한두 편 본 게 아니다 보니 어느 순간부턴 ‘음악’이 각인이 됐던 것 같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학창 시절을 보낸 시기가 1970년대니까요, 그땐 놀거리가 없었어요. 음악과 책이 전부였으니 생각해보면 지금의 저를 수식하는 직업들, 그러니까 작가나 평론가, 칼럼니스트가 전혀 새롭거나 이상할 일이 아닌 거죠.
GQ 1970년대의 음악 시장은 어땠나요?
JH ‘팝’이라는 음악이 쏟아져 들어왔던 시기예요. 당시 전국에 음반 가게가 2만 개 정도 있었다고 해요. 라디오의 시대였으니, 매체를 통해서 공유되는 음악도 정말 많았고요. 출판 시장도 마찬가지였어요. <월간 팝송>이라는 잡지가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정말 많았으니까, 당시 ‘음악’의 시장성은 굉장했죠.
GQ 그럼 음악 애호가였던 ‘학생 이종학’이 오디오에 눈을 뜨게 된 건 어떤 계기였어요?
JH 고등학교 2학년 때. 옆자리 짝꿍의 집이 부유했어요. 어느 날 그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안방에 뭔가 커다란 게 있는 거죠. 친구가 ‘미제’라고 하면서 킴 칸스 Kim Carnes의 ‘베티 데이비스 아이즈 Bette Davis Eyes’를 틀어줬는데 와, 소리가 굉장한 거예요. 기름지고 풍성하고.
GQ 문득 어떤 모델이었는지 궁금해집니다.
JH JBL의 L100이라는 모델이었어요. 앰프는 마란츠 Marantz에서 나온 리시버. 이 조합이 제 귀를 확실하게 연 거죠. 그때부터 오디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GQ 그런데 당시엔 오디오를 공부하려면 아무래도 쉽지 않았겠어요. 지금처럼 인터넷이 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JH 재밌는 게 제가 오디오와 가까이 지낼 운명인 건지, 대학생 때 만난 친구 녀석의 아버지가 우리나라 오디오 잡지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오디오와 레코드>의 발행인이었어요. 전창훈 선생님인데, 그분 덕분에 제가 오디오 관련한 정보들, 지식들을 굉장히 빠르게 습득할 수 있었어요. 그때 선생님 방에 있었던 오디오가 JBL의 L150이라는 모델이었죠.
GQ 당시 JBL이 많이 보급된 이유가 있었나요?
JH 자주 목격됐던 건 누구나 접할 수 있는 대중적인 브랜드라서 그래요. 그렇다고 가격이 쌌던 건 결코 아니었지만, 값을 좀 내더라도 좋은 소리를 내는 오디오를 갖고 싶었던 이들에게 JBL은 어쩌면 1옵션이나 마찬가지였죠. 지금이야 훨씬 더 많은 선택지가 있고, 더 좋은 오디오를 만드는 회사가 수두룩하지만, 당시 한국 시장은 그렇지 않았어요.
GQ ‘선택지’ 얘기가 나와서요. 오디오를 선택하는 데 있어 음악적 장르가 기준이 될 수도 있다는 선생님의 의견이 흥미로웠어요.
JH 맞아요. 한 예로 영국 브랜드 탄노이 Tannoy라고 있어요. 비틀스 노래와 함께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전설적인 브랜드인데, 웨스트민스터 Westminster라는 모델이 가장 유명해요. 영국 오디오를 말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명기죠. 그런데 이 탄노이 오디오가 클래식 음악을 듣기에 아주 제격이거든요?
GQ 이유가 궁금합니다.
JH 당시 클래식 음반 회사 데카 Decca가 선보인 신기술, ‘FFRR(Full Frequency Range Recordings)’을 구현한 오디오가 바로 탄노이였기 때문이에요. ‘클래식 음악은 탄노이 오디오’라는 공식이 바로 이때 생겼다고 봐도 무방하죠.
GQ 그럼 JBL은 어떤가요?
JH JBL은 재즈 음악을 잘 구현해주죠. 재즈 음악에서는 심벌즈의 리듬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인데, 안타깝게도 많은 오디오가 이 심벌즈 소리가 명료하지 않아요. 반면 JBL은 굉장히 리얼하게, 생생한 타격감이 그대로 전달되고요. 베이스나 드럼도 아주 박력 있게 나오죠. 혼 스피커라면 여기에 관악기의 소리까지 아주 사실적으로 울려 퍼지고요.
GQ 심벌즈 소리의 구현이 어려운 데는 어떤 이유가 있나요?
JH 심벌즈는 메탈 소재 악기죠. 이것을 스틱으로 두드리면 소리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특징이 있어요. 구현이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물론 컴프레션 드라이버를 사용하면 이렇게 퍼지는 음들을 빠르게 잡을 수 있어요. 또 돔 트위터를 쓰면 음이 조금은 부드러워지기도 하고요. 여기서 핵심은 JBL은 훌륭한 우퍼를 사용했다는 거예요. 덕분에 심벌즈처럼 빠르게 음이 변화하는 소리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거죠.

JBL SUMMIT AMA X5, REVEL PERFORMA.

GQ 그럼 팝을 듣기엔 어떤 브랜드가 좋은가요?
JH 클래식과 재즈가 구현되면 팝은 당연히 따라온다고 봐야죠. 클래식과 재즈, 두 가지를 예로 든 건, 원음 그대로의 구현이 가장 까다로운 음악 장르이기 때문이에요.
GQ 원음의 구현.
JH 그렇죠. 그런데 여기에서 ‘원음’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해요. 오디오를 설명할 때 “원음을 재생한다, 원음을 구현한다”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그럼 좋은 오디오의 기준이 되는 이 ‘원음’이 뭔지 알아야죠. 원음이 뭘까요?
GQ 그대로의 소리?
JH 맞아요. 그런데 오디오를 설명할 땐 여기에 ‘녹음된’이라는 말이 붙어야 정확한 표현이 돼요. 음반은 녹음된 형태고, 오디오는 재생된 음반을 통해 소리를 내는 기기니까요. 우리가 현장에서 듣는 생생한 소리, 생생한 음악이라는 뜻의 ‘원음’과는 좀 차이가 있죠.
GQ 그럼 녹음 환경도 중요하겠군요.
JH 그래서 오디오가 원음을 잘 구현했을 때, 이를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이올린 소리가 좋다” 정도만 이야기하고, 좋은 귀를 가진 사람은 더 많은 정보를 말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더 많은 정보라면, 어떤 연주자인지, 어떤 회사의 바이올린인지, 또 몇년도에 녹음한 건지 이런 환경적 구성을 짐작하며 감상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원음’이 귀한 건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그래요.
GQ 듣는 재미가 이런 곳에서 발견되는 거군요.
JH 그렇죠. 그래서 원음을 잘 구현했다는 것, 있는 그대로의 원음이 들린다는 건 그만큼 더 많은 정보가 들린다는 것과 같아요. LP가 듣기 좋은 이유도 그런 요소들을 만날 수 있어서 그래요. 아날로그 녹음이 가진 맛깔스러운 느낌이 거기에 있죠. 반대로 디지털 원음, 고음질 원음은 지금의 스트리밍 기기들, 디지털 기기들이 더 어울리고요.
GQ 장르에 따른 기준만큼 공간에 따른 기준도 중요하죠?
JH 그럼요. 어쩌면 무조건 그래야 하고요. 예를 들어서 청음 환경을 방에 만든다면 보통 5~8평 내외겠죠? 그럼 사실 네모난 상자형 스피커인 북쉘프 오디오에 인티 앰프 Integrated Amplifier면 충분해요. 출력이 대단히 높을 필요도 없으니까, 50~100와트면 되고요.
GQ 오디오와 앰프 외에 신경 써야 하는 건 또 뭐가 있을까요?
JH 저는 개인적으로 소스기에 투자를 좀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턴테이블이나 CD플레이어같이 음원을 다루는 기기를 ‘소스기’라고 하는데, 상대적으로 이 소스기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이 많아요. 아쉽죠. 개인적으로는 이 소스기가 전체 오디오 시스템의 50퍼센트를 차지한다고 봐요. 왜냐하면 처음이 좋아야 끝이 좋거든요. 녹음된 음원을 재생시켜주는 기기, 그러니까 소리의 시작점이 좋아야 감상의 마무리까지 좋을 수 있는 거죠. 여기에 케이블의 존재도 있는데, 이건 쉽게 말해 원음의 손실을 방지해주는 전용 통로라고 보면 돼요. 다른 노이즈 없이 원음만 전달하는 장치가 케이블인데, 비싼 건 1억 5천만원을 웃도는 것도 있을 정도로 이 세계도 굉장해요.
GQ 그럼 앰프와 오디오, 소스기, 이 세 가지 구성이 한쪽으로 치우치면 어떤가요?
JH 수트와 같아요. 수트는 균형이 중요하죠. 세 구성 중 오디오에만 힘을 줬다면 마치 톰 포트 수트에 그저 그런 운동화를 신었거나, 허름한 전자시계를 찬 것과 같아요. 비유를 하자면요.
GQ 오디오의 세계를 두고 ‘우주와 같다’고 할 정도로 경우의 수는 많겠지만, 선생님이 보기에 기본적, 대중적인 구성이라면 어느 정도의 가격대에서 갖춰질 수 있을까요?
JH 공간을 5~8평 정도의 방으로 가정한다면, 5백만원이면 충분하죠. 앰프, 오디오, 소스기 전부 해서요. 클래식을 주로 듣는다면 몇몇 모델이 특정되는데, 주로 팝쪽이라면 JBL의 북쉘프 정도면 훌륭하죠. 인티 앰프는 수백 종이 있는데, LP를 듣는다면 진공관이 좋지만, 그게 아니라면 오디오와 같은 라인으로 맞추면 좋아요. 흔히 하는 오해가 출력이 좋아야 한다고 이해하는데 사실 방 같은 실내에선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구동력이 좋아야 하죠. 이게 키예요. 계속 JBL을 이야기하는 건 JBL이 홈 타입 스피커라 구동이 편하거든요. 참고로 구동력이 좋다는 건 감도가 좋다는 말이에요. 아, 그리고 장비는 인터넷보다 숍에서 구입하는 걸 추천합니다. 거기가 애호가들이 모이는 사랑방이나 다름없거든요. 정보든 매물이든, 뭐라도 얻기엔 이만한 장이 또 없어요.
GQ 좋은 장비를 가졌다고 해서 좋은 귀를 갖게 되는 건 아니겠죠?
JH 왜요, 좀 멋없어 보이지만 맞아요. 좋은 구성에서 뻗는 소리는 정말 다르거든요, 다르니까 좋은 귀를 금방 갖게 되고요. 입문자는 모를 수 있어요. 그런데 좋은 세팅으로 음악을 듣다가 차에서 같은 음악을 들어보면 금방 알게 돼요. 이런 다운그레이딩도 귀를 트이게 하는 방법 중 하나고, 또 개인적으로는 연주 음악을 듣는 걸 추천해요. 악기의 소리나 하모니에 집중해 감상하면 좋은 공부가 되죠. 그런데 사실 가장 좋은 건 내가 듣고 싶은 음악으로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야 자주 들을 수 있으니까. 자주 들어야 결국 들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