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을 볼캡 말고 ‘이것’, 옷 잘 입는 남자는 모두 가진 이 모자
아무튼 이 유머러스한 모자는 갑자기 등장해서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5패널 캡, 더트백 캡, 하이 크라운 캡, 톨보이 토퍼, 실버 레이크 샤포 등. 그리고 요즘 스타일 좋은 남자들은 이걸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야구 모자는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걸 말해줄 수 있다. 그들의 좋아하는 스포츠 팀, 그들이 속한 문화, 때로는 그들의 정치적 성향까지. 심지어는 이마에 수놓인 자수 로고 하나만으로, 낯선 사람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혹은 어디서 시간을 보내는지도 대략적으로 짐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모자를 읽는 일은 과학이라 부를만큼 정확하진 않지만, 액세서리를 고를 때의 의도성에 대해서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모자의 그래픽이나 로고를 넘어서 형태 자체에 담긴 메시지도 있으니까. 2020년대 들어 우리는 내내 ‘하이 크라운’ 모자의 유행을 보아 왔다.
수년째 이런 뻣뻣하고 높은 모자를 써온 오스틴 버틀러와 셀럽들이 사랑하는 배스 프로 샵과 세길만 스테이블의 캡이 그 예시다. 일찍이 켄달 제너는 2022년 파리 패션위크에서 이미 세길만 스테이블의 캡을 착용해 남성 스트리트웨어 팬들에게 큰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런 모자들은 클래식한, ‘소년스럽게 닳은 빈티지 야구모자’와는 다르다.
이 새로운 잇템은 애쉬튼 커처가 즐겨 썼던, 뒤가 망사로 된 트러커 캡과도 다르다. 물론 구조적으로는 많은 부분 닮아 있기도 하다. 높고 단단한 모자 윗부분(크라운)이 머리에 간신히 얹혀 있고, 어딘가에 찌그러지거나 접힌 자국이 남아 있다. “이건 농담이야, 아마도.”라는 풍의 메시지를 풍기는 것이 포인트다.
우리가 보기에는 촌스러운 미국 시골풍 모자로 느껴지지만, 그게 기존 패션의 질서를 뒤집기 때문에 매력적이다. 버틀러도 이런 모자를 써왔고, 제이콥 엘로디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제임스 프랭코의 브랜드인 팔리 할리우드의 ‘세인트 내털리 우드(Saint Natalie Wood)’라고 쓰인 켈리 그린색 모자로 자신의 룩에 포인트를 줬다. 이 브랜드는 ‘더트백 감성의 고급 스트리트웨어’를 전문으로 한다.
이 스타일리시하게 우뚝 솟은 모자의 피크를 장식한 사람은 해리 스타일스다. 그는 납작해진 하이 크라운 캡을 토피도 스니커즈와 짧은 반바지에 매치했다.
아마도, 약간 흐물흐물한 하이 크라운 모자는 ‘조금은 피로해진 문화’를 상징하는 전조일지도 모른다.
최근 캔버스 토트백에 라부부 인형을 달고, 약간 벗겨진 검정색 네일 아트가 남은 손으로 한손에는 말차라떼를, 다른 손에는 페미니스트 고전을 들춰보는 ‘퍼포머티브 남성’이 화제가 되었다. 동시에 남자들은 자기 남성성을 패션에 어떻게 녹여낼 수 있는지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해리 스타일스는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점프수트와 가죽 재킷을 걸치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절제된 빈티지 데님과 티셔츠 차림으로 전환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자기 생각이 담긴 버전의 하이 크라운 모자를 착용했다. 조금은 연출된 느낌이 느껴지지만, 우리는 모두 세련된 도시 남자 대신 시골풍 너드남을 갈망하고 있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GQ 칼럼니스트 맥스 벌링거는 자기 뉴스레터에서 이 트렌드를 ‘하트랜드 드래그’라 부르기로 했다. 이 유행을 퀴어적 관점에서 분석하며 과거의 여러 시점을 언급했다. “예전부터 게이 남성들은 이성애 중심 사회에 섞이기 위해 과도하게 남성적인 스타일 코드를 차용하거나 반대로 조롱해왔어요. 전통적인 드랙 신에서 게이 남성들이 여성성을 기리는 동시에 그것을 과장하듯, 하트랜드 드래그에서는 투박한 남성성의 연기를 동시에 찬양하고 풍자한다. 이건 특정 디자인 룰을 가진 패션 코드라기보단,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바이브다.”
같은 스타일의 비싼 디자이너 버전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만, 진짜 멋은 이베이나 중고거래를 통해 빈티지 버전을 찾아 말도 안 되게 낮은 가격으로 입찰하는 것에 있다.
그동안 이런 단단하고 높은 모자는 군 복무자들의 머리 위에서 자주 보였다. 그들의 군 부대와 전투 이력이 새겨져 있었을 것이고. 최근의 것으로는 2024 미국 대선을 꼽을 수 있다. 양 캠프 모두 자기 버전의 5패널 캡을 선보였다. 트럼프 진영은 ‘Make America Great Again’이 쓰여진 빨간 색으로, 해리스 진영은 카모플라주 패턴으로.
올해 초, 대통령이 캐나다를 ‘51번째 주’로 만들겠다는 의사를 밝혔을 때, 캐나다인들은 자기만의 캡을 만들어 대응했다. 그들의 네이비색 스냅백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CANADA IS NOT FOR SALE(캐나다는 판매용이 아니다)” 그리고 주목할 만하게도, 그 모자들은 약간 더 낮은 크라운을 가지고 있었다.
모자와 머리 사이에는 벨루가처럼 볼록하게 공간이 만들어진다. 꾸밈없고 자연스러운 시골의 청년 이장 같은 감성이 있다. 이 묘하게 중독성 있는 모자는 낚시, 사냥, 야영같은 미국풍 남성미에 닿아있으면서도 동시에 잘 연출한 분위기까지 지닌다. 아마 이 스타일의 인기가 새롭게 부상한 이유는, 정형화된 캐주얼 클래식에 대한 미묘한 반항일 수도 있고 생각보다 버바 검프의 팬이 많은 것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