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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계의 세대교체가 어려운 이유 (Feat.봉박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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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르익은 거장들에 이어 낯선 얼굴이 등장 중인 세계 영화신 흐름에서 한국 영화계는 어떠한가.

글 / 임수연(<씨네21> 기자)

20년 전, 충무로를 대표하는 감독은 1969년생 봉준호, 1963년생 박찬욱, 1960년생 홍상수, 1954년생 이창동이었다. 그리고 2024년인 지금도 여전히 한국 영화계를 상징하는 감독은 ‘봉박홍이’다.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한국의 지지부진한 세대교체는 더 명확히 드러난다. <라라랜드>, <위플래쉬>의 데이미언 셔젤(미국, 1985년생),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티탄>의 쥘리아 뒤쿠르노(프랑스, 1983년생),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클로즈>의 루카스 돈트(벨기에, 1991년생),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다니엘 콴(1988년생)・다니엘 셰이너트(1987년생) 등 최근 영화제를 휩쓴 영화는 1980~1990년대생들이 만들고 있다. 물론 한국에도 <벌새>의 김보라(1981년생), <남매의 여름밤>의 윤단비(1990년생), <메기>의 이옥섭(1987년생),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의 김세인(1992년생) 등의 데뷔작이 평단으로부터 호평받으며 차세대로 주목받았지만 우리는 아직 이들의 장편영화 차기작을 만나지 못했다.

옆 나라 일본은 세대교체에 성공했다. 1962년생 고레에다 히로카즈, 1964년생 아오아먀 신지, 1955년생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계보가 <드라이브 마이 카> 하마구치 류스케(1978년생),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미야케 쇼(1984년생), <하모니움>의 후카다 코지(1980년생) 등으로 이어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하마구치 류스케는 도쿄예술대학에서 구로사와 기요시의 지도를 받은 제자이기도 해서 ‘일본영화 뉴 제너레이션’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름이 됐다.

일본 영화산업 자체가 호황기라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한국의 사례와 비교하며 제작사에 충분한 수익이 돌아가지 않는 자국의 시스템을 오랫동안 비판해왔다. 일본영화는 대체로 영화사, TV 방송국 등 콘텐츠 기업이 임의로 조합을 만들어 특정 작품에 공동 투자하는 제작위원회 방식으로 제작된다. 최근 일본 영화계가 하락세에 접어든 이유를 제작위원회의 보수성과 폐쇄적인 시스템에서 찾기도 한다. 하지만 일본 인디 영화계는 제작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투자・배급 및 상영이 가능한 자생적인 영화 제작 방식을 터득했다. 예컨대 도쿄예술대학, 도쿄공예대학 같은 대학교나 뉴 시네마 워크숍(NCW), 영화미학교와 같은 영화 교육기관은 신인 감독이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터전이 됐다. 학생들이 돈을 모아 자발적으로 영화 현장에 참여한다든지, 스스로 자금을 조달하는 ‘자주 영화’를 만든다든지, 영화 워크숍의 집단 창작 형태로 제작비를 충당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하마구치 류스케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연기 워크숍 수강료로 예산을 마련해 비전문 배우들과 함께 <해피 아워>를 완성했다. 이들에게 교육기관은 반복적인 시도와 실패를 통해 결국 자신만의 작업 방식과 미학을 확립할 수 있는 토양이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영화는 일본의 커뮤니티 시네마, 미니 극장 문화를 통해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해외 세일즈 사나 배급사는 작은 극장에서 입소문을 타는 영화를 주목한다. 그렇게 적은 예산으로 만든 신인 감독들의 영화가 해외 관객을 만날 수 있다. 한편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구로사와 기요시의 초기작 때부터 다져진 일본 예술 영화계와 유럽 영화사의 관계는 감독들의 ‘넥스트’를 빨리 만나볼 수 있게 한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아사코>, 미야케 쇼의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후카다 고지의 <러브 라이프>는 모두 프랑스 자본이 투입된 작품이다. 그리고 이들 네트워크는 젊은 신예들의 작품이 해외 영화제로 진출하는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한다.

반면 한국 독립 영화계는 제작, 투자, 배급, 상영으로 이어지는 순환 구조가 불안정한 실정이다. 한때 한국영화아카데미(<파수꾼>)와 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남매의 여름밤>) 졸업 영화가 신인 감독 발굴의 장이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도교수가 존재하는 학교 시스템에서는 관습을 거스르는 실험적인 작품이 나오기 어렵다. 또한 영화학교가 아닌 곳에서는 자금을 조달하고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가 제대로 확립되어 있지 않다. 예술영화 감독이 가진 재능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는 가장 빠른 방법은 칸, 베니스, 베를린 등 3대 영화제에 초청받는 것이다. <다음 소희>의 정주리(1980년생), <괴인>의 이정홍(1985년생), <겨울밤에>와 <춘천, 춘천>의 장우진(1985년생) 등은 넥스트 홍상수, 이창동으로 주목할 만한 이름이지만 또래 일본 감독들만큼 해외 영화제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지는 않다. 영화와 영화제의 위기를 논하는 시대, 유럽 영화제 프로그래머들은 대중성과 흥행을 위해 할리우드 스타들의 신작을 부지런히 가져오는 데 애쓰고 있고, ‘아시아 쿼터’를 채울 자리는 최근 들어 인도나 베트남 쪽을 더 선호한다. 한국영화는 거친 장르영화나 검증된 이름이 아니면 선택받기 어렵다.

상업영화 진영에서는 <파묘>의 장재현(1981년생),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의 변성현(1980년생),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의 김용훈(1981년생),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엄태화(1981년생), <파일럿>의 김한결(1985년생), <돈>의 박누리(1981년생) 등을 꼽아볼 수 있겠지만 아직은 선배 세대의 아우라가 너무 강력하다. 독립영화로 호평받았던 감독들이 상업영화 진출 이후 아쉬운 성적표를 받는 경우는 또 어떤가. <파수꾼>의 윤성현 감독이 연출한 <사냥의 시간>, <굿바이 싱글>의 김태곤 감독이 연출한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범죄의 여왕>의 이요섭 감독이 연출한 <설계자> 등은 어디서부터 꼬인 것일까. 평단의 지지를 받았던 감독들이 차기작을 내놓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지난 10년간 장편 독립영화 데뷔작으로 주목받은 감독들은 거의 대부분 상업영화 제작사와 계약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차기작이 잘 나오지 않는 이유는 다양하다. 감독과 제작자의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거나, 캐스팅이 어렵거나, 투자를 받지 못했거나···. 차기작에 들어가도 감독이 제작자와 투자자에게 휘둘리다가 혹은 감독이 고집한 바를 밀어붙였는데 대중의 외면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요컨대 감독은 투자자와 제작자에게 너무 끌려가도 안 되고 말을 너무 안 들어도 안 된다. 상업영화는 여러 이해 관계자의 의견을 조율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다. 바로 프로듀서다. 1930년대부터 스튜디오 시스템이 정착된 할리우드는 베테랑 제작자가 재능 있는 신인 감독을 발굴해 블록버스터 연출을 맡겨 성공시키는 사례를 숱하게 만들었다. 안타깝게도 충무로는 이 직군의 힘이 약하다. 신인 감독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의 비전을 존중하는 감각 좋은 프로듀서와 열린 투자자가 한국에는 거의 없다. <고양이를 부탁해>, <장화, 홍련>을 제작했던 오기민,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봉준호 감독에게 <살인의 추억>이라는 두 번째 기회를 준 차승재 같은 제작자가 지금 업계에는 부재한다.

한국 영화계의 세대교체가 되지 않는 이유는 감독 개개인의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재능 있는 신인은 계속 배출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창작・제작 지원이 위축되고 서울독립영화제는 예산 전액이 삭감되면서 존폐 위기에 놓였다. 부산국제영화제 관객에게 입소문을 탄 영화도 배급의 어려움으로 실제 개봉까지 1~2년을 기다리고, 상영관을 제대로 잡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감독에게 ‘다음’을 재촉하기는 어렵다. 코로나19 이후 극장산업이 침체되고 투자가 보수화되면서 이미 상업적 성공을 거둔 감독도 OTT 시리즈로 눈을 돌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곳에는 신선하고 독특한 기획에 투자하고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충무로 세대교체는 이를 가능케 할 시스템이 선행된 후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10년 뒤에는 봉준호와 박찬욱이 아닌, 넥스트 ‘봉박’이라는 수식어가 굳이 필요 없을 만큼 높은 성취를 이룬 이름들이 한국 영화계의 선두에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