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m도 못 뛰던 초보 러너의 마라톤 10K 완주 러닝썰
아니 이게 되네. Just Do it 러닝 성장 서사.
“아… 토할 것 같아…”. 지난 6월, 나이키 러닝 세션에 참가한 첫날의 나는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 러닝이라 다짐했다. 집에 돌아오니 나이키로부터 잔인하고도 다정한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4달간 함께 훈련하고 10월에 한국의 3대 마라톤 중 하나인 춘천에서 열리는 대회의 10K 레이스 완주에 도전하자는 제안이었다. 첫 세션의 3km 시티런 코스에도 숨이 차고 다리가 후들거리는데 마라…ㅌ…? 마라 뭐를 어째요…? 완곡한 거절의 답장을 변화구로 던지며 슬쩍 선을 그었다. “제가 10km를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ㅜ”. 그리고 기도했다. “하나님, 부처님, 다음 주 러닝하는 날에 비 오게 해주세요”.
그토록 정성껏 기우제를 드렸건만 비는 오지 않았다. 나이키도 나의 변화구를 캐치 못 했는지 해맑은 공지를 보내왔다. “이번 주 러닝은 트랙런입니다^^”. 돌이켜보면 매주 투덜대면서도 달리기 위해 문밖을 나서게 이끈 마법의 단어는 ‘오늘 맑음’이 아니라 ‘오늘 뛰실?”이었다. 내가 참여한 러닝 세션은 나이키가 미디어를 대상으로 4개월 동안 매주 진행하는 러닝 프로젝트로, 한 다리 건너면 다 친구고 동료인 까닭에 체육 시간 합반 수업하는 기분으로 뛰러 가는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뛰실?” 묻는 친구에게 화답하듯 놀러 가는 마음으로 달리러 나서면 어느새 이만 치씩 앞으로 나아가 있었다. 이번 주는 3km. 다음 주는 4km. 또 그다음 주는 5km. 조금씩 더 천천히 멀리.
나이키의 러닝 세션에는 다양한 러너가 참여했다. 완주 자체가 목표인 초보 러너부터 기록 갱신을 목표로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중급 러너까지, 목적은 각기 다르지만 레벨 불문 공동의 기쁨은 무조건적인 칭찬과 격려였다. 대부분은 나 같은 초보였기 때문에 퇴근 후에 러닝을 하러 나섰다는 것 자체에 ‘나님 기특해! 나 자신 사랑해!’ 모드로 웃으며 서로의 어깨를 토닥이기 바빴다. 그날의 작은 목표를 달성하면 어디서도 못 받을 칭찬이 화수분처럼 펑펑 쏟아졌다. 단지 젖병을 다 비우거나 뒤집기만 성공해도 환호를 받는 갓난 애기가 된 것처럼 말이다.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을 몰아쉬며 목표 지점에 다다를 때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번지는 미소가 좋았던 걸까, 앞서 달린 동료들이 하이파이브로 맞아주는 격려의 맛을 알아버린 걸까, 꼴찌일지언정 어쨌든 목표를 해냈다는 성취감이 달았던 걸까. 나이키와 매주 다른 코스로 총 10번의 러닝 세션을 함께했는데, 매주 화요일 밤마다 나는 거짓말처럼 운동화 끈을 동여매고 있었다. 도심 한복판에서 숲길에서 한강에서 트랙에서.
3개월 차에 들어서자 어느덧 러닝은 나이키 세션과의 약속이 아닌 나와의 약속이 됐다. 일주일에 네 번은 달리기로 마음먹고 나니 ‘오늘은 러닝하는 날이라서 안 돼’라는 낯선 말로 술 마시러 가자는 유혹을 마다하거나 늦은 밤이라도 내키면 집 근처를 달리는 ‘안 하던 짓’을 잔뜩 하게 됐다. 러닝이 생활 패턴 자체를 바꾼 것이다. 다음 주에 더 잘 뛰고 싶어서, 나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어서, 오늘 안 뛰면 내일 몸이 무거우니까 등 뛰는 게 좋은 이유도 하나씩 늘어갔다. 달리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게 된 데는 몇 가지 노하우가 작용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러닝을 점점 덜 싫어하게 됐다는 표현에 가까운데, 이는 자신의 한계를 줄여가는 여정의 궤도와 일치한다.
하나, 음악을 들으며 달리기. 음악 덕에 달라진 건 목표가 500m가 아니라 ‘한 곡’으로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한계치가 넓어진 것이다. 보통 노래 한 곡의 길이가 약 3~4분이니까 세곡 정도 듣고 나면 1km쯤 달리는 셈인데, 세션 초반에는 500m만 뛰어도 숨이 가빴기 때문에 NRC 앱으로 러닝 거리를 계속 체크하곤 했다. 스스로의 한계를 500m로 설정하고 더 뛸 수 있는데도 멈춰 쉬는 나쁜 습관 탓이다. 그러나 기준을 음악으로 바꾸고 ‘다음 곡까지만 조금 더 뛰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달리다 보니, 쉬지 않고 뛰면서 듣는 노래가 세 곡에서 여섯 곡으로 여섯 곡이 아홉 곡으로 늘어나는 마법이 일어났다. 중요한 건 얼마나 멀리 달리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즐겁게 달리느냐로 인식이 변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나는 러닝을 뛰는 노래방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으니 이만큼 다이나믹하고 도파민 터지는 노래방 또 없습니다. “사장님, 러닝 서비스 30분 추가요!”
둘, NRC 앱 내 ‘클럽’ 카테고리의 ‘리더 보드’로 동기 부여하기. 팔로우한 러너 친구끼리 서로의 기록을 공유하는 기능인데, 기간별로 친구들이 얼마큼 달렸는지 확인할 수 있어 건강한 자극이 된다. 특히 랭킹 데이터는 러닝에 게임같이 즐거움을 더한다. 비교 순위를 제공하고 앞순위와 ‘ㅇㅇkm 차이’라고 명시하기 때문에 앞사람 따라잡기에 도전하는 단기적인 목표를 성취할 수 있어서다. 나 역시 어느새 2위에 등극한 사실을 발견한 후로는 그 자리를 지키고 싶다는 생각으로 달리러 나간 적 있으니 꽤 효과적인 동기 부여다. 유난히 덥고 폭염으로 가득했던 여름, 어느새 나는 달린 후에 땀샘이 팡팡 터지는 개운함을 아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달리는 것 자체를 즐기게 되니 러닝화의 성능에 대해서도 눈이 뜨였다. 나와 4개월 간의 러닝 여정을 함께한 러닝화는 나이키 페가수스 41. 킵초게도 신었던 모델과 동일 라인이니 나름 커플 신발이다. 이 신통방통한 러닝화의 효험을 깨닫게 된 건 신발장에 묵혀놨던 과거의 러닝화들을 다시 꺼내 신어봤을 때다. 그중 하나는 나이키 에픽 리액트 플라이니트로 이 신발로 말할 것 같으면 2018년에 러닝화를 신고 클럽에 갔다가 천장에 머리가 닿을 뻔한 전설을 남긴 모델. 한강 러닝 후에 갑자기 클럽에 가게 됐는데 쿠션이 어찌나 통통 튀던지, 점프하는 내 모습이 마치 슈퍼마리오 같았다는 목격담이 풍문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페가수스41의 쿠션감은 또 다른 차원의 뛰는 맛을 맛보여줬다. 통통 튀는 맛은 덜하지만 달릴 때 발의 움직임에 따라 에너지를 리턴하는 탄성이 쫄깃했다. 몇걸음 뛰어 보면 ‘반응성’이란 이런 거구나 깨닫게 된달까.
나이키 페가수스는 ‘41’이라는 숫자가 말해주듯 무려 40년 넘게 진화를 거듭하며 전 세계 러너들의 사랑과 신뢰를 받아온 러닝화다. 나이키의 기술이 집약된 ‘리액트X 폼’을 중창에 적용했는데, 전작인 페가수스 40에 장착된 나이키 리액트 폼보다 13% 향상된 에너지가 돌아와 러너를 추진시킨다. 앞꿈치와 뒤꿈치에 ‘에어 줌 유닛’을 적용해 푹신한 쿠셔닝 덕에 확실히 발의 피로도도 적다. 갑피는 이전 모델보다 가볍고 통기성이 뛰어난 엔지니어드 매쉬소재로 제작됐다. 신발 끈을 신발 전체를 감싸는 내부 중족부 밴드에 직접 연결한 디자인은 발을 착 감싼다. 달릴 때 발이 움직이지 않게 안정적으로 지지하는 ‘다이내믹 미드풋 핏 시스템’이라 불리는 구조다. 나이키 연구소의 여러 박사님이 머리를 맞대고 개발한 기술력은 차치하고, 달릴 때도 ‘F’인 엔프피 러너에게 힘이 되는 건 킵초게 효과다. 킵초게와 같은 신발을 신고 달린다는 것만으로도 한 걸음 더 나아갈 용기를 주어서다. 지난 4개월간 목젖까지 숨이 차올라 포기하고 싶을 때 늘 되뇌였다. “킵초게도 포기 안 하고 뛰는데, 나 따위가 어딜 감히…”.
대망의 춘천 대회 당일. 완주에 대한 굳은 의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대회를 앞두고 골반 부상을 입어 충분한 연습을 못 한 탓에, 사전에 10k를 뛰어본 적 없는 경험의 부재가 자신감을 위협했다. 아프면 포기하겠다는 나약한 마음으로 달리는 노래방으로 떠났다. 케이팝 아이돌부터 마이클 잭슨, 자미로콰이, 그린 데이까지. 시대와 국적을 불문한 온갖 뮤지션들과 글래스톤베리 공연장에서 함께 뛰는 마음으로 ‘그래, 한 곡만 더!’ 하고 달리다 보니 거짓말처럼 9km를 넘어선 것 아닌가. 약 1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달리면서 가장 충만하게 차오른 감정은 ‘믿음’이었다. 코스에 오르막이 많아 숨이 가쁠 때도 많았는데 욕심내지 않고 천천히 페이스 조절을 한 게 성공의 요인이었다. 힘들어도 호흡이 고르니 나는 지금 괜찮다고, 더 할 수 있다고, 하던 대로만 하면 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솟아났다. 나도 모르는 새에 4달 간의 트레이닝이 ‘내 몸은 내가 안다’를 실현해, 숨소리와 심장 박동만 들어도 자신의 컨디션을 가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0k 완주는 미지의 목표였지만 이미 숱하게 이겨내 본 적 있는 ‘아는 힘듦’은 두려울 것이 없었다.
스스로를 믿으며 결승선을 500m 남기고 전력 질주를 했다. 헉헉대며 심장이 쿵쾅거리는 고통을 지나 결승선을 넘는 순간의 희열, 짜릿한 성취감, 강렬한 승리감까지. 형언할 수 없는 행복으로 범벅이 된 채 나도 모르게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숨이 벅찬 순간이 이내 가슴이 벅찬 황홀로 변하는 이 근사한 경험을 누구나 한번은 느껴봤으면 좋겠다. 10K를 완주해 냈다는 성취감의 마침표는 무엇보다도 온 힘을 다해 달렸지만 그다지 숨 가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는 이제 자신감과 믿음 사이 그 어딘가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된 거다. 자신의 페이스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누구도 다름 아닌 자신만의 속도로.
결승선을 통과하니 완주 기록이 문자 메시지로 도착했다. 나의 기록은 1시간 4분 8초. 기록 측정 기관이 같아 2019년에 참가했던 마라톤 기록과 비교할 수 있는 재미가 덤으로 주어졌는데, 당시의 기록은 1시간 30분 12초였다. 5년 만에 거의 26분이나 기록이 단축된 것이다. 돌이켜보면 2019년엔 금방 포기하고 걸었으니 같은 거리를 쉬지 않고 뛸 수 있을 만큼 강해졌다는 의미다. 춘천 대회 10K 완주는 스스로를 안전지대에 가두지 않고 자신의 한계를 재설정하게 해준 여정이었다. 지난 4개월 간의 트레이닝이 증명하듯, 500m마다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달리기를 멈추었던 내가 이제 10km도 거뜬히 달릴 수 있을 만큼 강해진 거다. 그러니 이제는 10km가 됐든 20km가 됐든 얼마나 멀리 가야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알고 있으면 된 거다. 나는 포기하고 싶을 때 멈추지 않으면 기어이 해내고야 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믿어도 된다는 걸, 조금은 불가능해 보이는 더 큰 도전도 어쩌면 ‘노래 한 곡’ 차이일 뿐이라는 것도. 나는 그게 몇 킬로미터든 삶의 어느 코스에서도 끝까지 달릴 수 있는 ‘러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