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Июль
2024

시원한 그늘을 만날 수 있는 서울 가볼 만한 곳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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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마주하는 한국 건축의 기운.

주한 프랑스 대사관 김중업파빌리온(옛 대사집무동)

건립 1962년 복원 2023년 건축가 김중업

벽으로 건축물을 지탱하는 방식 대신 최소한의 철근 콘크리트 기둥으로 채광과 환기와 너른 공간을 확보하는 필로티 구조를 근현대 건축에 들여온 르 코르뷔지에. 그에게 사사한 김중업 역시 필로티 구조를 자신의 설계에 종종 녹여냈고, 1960년대 흑백 사진 속에 남은 주한 프랑스 대사관 당시 대사집무동을 지지하는 1층의 기둥들과 그 사이 정중히 자리한 중앙 계단, 이들이 저기 밖에서도 시원하게 보이는 풍경은 멀리 북악산에서 부는 바람마저 들렀다 가지 싶을 만큼 의기가 장해 보였다. 업무 공간 확장이 필요해 이러한 필로티 구조를 벽으로 막았던 모습을 다시 김중업의 설계 그대로 복원한다는 소식이 속 시원하지 않을 수가 있나. 다시 호방해졌을 정경을 고대한 채 마주한 대사관 앞에서 파빌리온이 어디 있나 헤매기도 전에 말로만 듣던 그것에 먼저 압도되었으나. 지붕. 누군가는 하늘을 나는 양탄자라고, 누군가는 혼이 실린 곡선이라고 읊는 지붕은 엄격한 대사관의 검은 철문 너머로도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김중업이 한국 전통 지붕에서 얻은 영감이라고 남긴 공식 기록은 없으나 본 프로젝트에 대해 자서전 <김중업: 건축가의 빛과 그림자>(1984년, 열화당)에서 “한국의 얼이 담긴 것을 꾸미려고 애썼고, 프랑스다운 엘레강스를 나타내려고 한, 피눈물 나는 작업이었다”고 한 묘사에 비추어보면 한국 전통 건축 속 살포시 들린 처마선을 겹쳐보는 건축계 내외의 시선이 무리는 아니다. 바른 걸음새에 날리는 도포자락마냥 가벼우면서도 풀 먹인 반월 깃처럼 단단하고 고아하게 얹힌 현 지붕 역시 각이 깎이고 보다 투박하게 변형되었다가 다시 찾은 원형이다. 본래 한옥 처마는 길게 내면서 그 끝을 살포시 들어 위에서 내리꽂히는 여름 해는 들지 못하게, 낮게 뜨는 겨울 해는 깊게 들게 했다. 완공된 대사관을 촬영한 당시 기념 사진 위로 이미학의 공간 왼쪽 모서리에 방긋 웃는 햇님을 그려둔 김중업도 그 빛과 그림자 아래 서 있었을 터이다.

보화각

건립 1938년 개보수 2024년 건축가 박길룡

서울 시내 기와집 한 채 값이 1천원이던 1943년, <훈민정음해례본> 원본을 1천원에 파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소식에 귀한 물건은 제 값을 치러야 한다며 1만원을 주고 수고비로 1천원을 더 지불하면서 사오는 그 마음은 무엇인가. 가진 금은보화를 내어가며 한국 예술품을 모은 간송 전형필의 심정을 비루한 현대인은 알 도리가 없고, 그에게 집 4백 채 값을 받고 고려청자와 조선 청화백자를 판 영국인 수집가 존 개츠비 John Gadsby가 남긴 기록에 빗대어 상상해볼 뿐이다. “전형필이 주체할 수 없는 재산을 가진 부호이기만 했다면 그에게 유물을 팔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문화재를 사랑하고 아끼는 모습에 감복했다.” 보화각은 간송 전형필이 모아온 “귀한 것”을 전시하는 우리나라 최초 사립 미술관이다. 독립운동가이자 서화가 위창 오세창이 ‘빛나는 보배를 모아두는 집’이라는 뜻에서 이름 붙인 보화각, 간송미술관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을 짓는 일은 일제 시대 당시 손꼽히던 조선인 건축가 박길룡이 맡았다. 보화각이 한국 근대 건축의 시작점으로 짚이는 박길룡의 설계가 맞는가 아닌가로 한때 국내 건축계가 소란스러웠는데, 노후화된 건물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창고에 묻혀 있던 설계 도면이 발견되면서 논란은 종식되었다. 설계도에 그 이름 박길룡건축 사무소가 선명하기에. 기능주의 모더니즘을 꿈꾸던 박길룡의 지문은 건축 자체에도 남아서 좁고 긴 창문이 특징적인 반듯한 입면체, 그 직사각형에 숨을 불어넣듯 비대칭적인 위치에 반원형 구조가 봉긋 튀어나온 모양새다. 외국에서는 선 룸 Sun Room이라고도 부르는 이 공간에 간송은 온실로서 식물을 두고 돌보았다. 2층에 자리한 반원형 공간은 자연스레 1층 현관의 차양이 되어 마치 해시계 바늘마냥 그늘이 만들어지는데, 재개관전을 보기 위해 문이 열리는 아침 10시도 전부터 현관 계단 그늘 아래서 줄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니 문득 보화각이 완공된 후 모여 사진을 찍은 당대 문화 예술인들의 얼굴이 스친다. 그들도 이 그늘 아래 앉아 있었다.

최순우 옛집

건립 1930년대 추정 건축가 미상

이 선생이 아니었다면 부석사 무량수전 기둥이 위아래로 향할수록 굵기가 조금씩 얇아지는 배흘림 형태라는 사실을 아는 이가 지금만큼 많았을까.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의 저자 최순우 선생은 국립박물관 학예사이자 관장, 미술사학자로서 평생을 한국미 연구에 쏟았다. 이곳은 그가 1976년부터 별세한 1984년까지 생활한 근대 한옥이다. 본래 1930년대 지어 주인 할머니가 거주했다던 집은 경기 지방 한옥의 특징인 자 구조로, 마당 중앙에 자리한 향나무 나이가 120~130세인 것으로 보아 나무를 기준으로 구축한 것으로 추정한다. 전통에 신문물의 효율과 합리를 반영한 근대 한옥이 그러하듯 이곳 역시 당시 많이 생산된 동판을 기와 처마 아래 덧대 차양 겸 빗물받이로 쓰고, 창호 문들 사이에 얇고 투명한 유리를 끼운 용자 用字 살문을 더한 삼중 문으로 단열력도 높였다. 옛집을 나긋이 안내하던 한란희 연구원이 방 벽면의 작은 스위치를 가리키며 “선생님은 보일러도 놓으셨어요” 하며 포르르 웃는다. 암, 버튼 하나로 뜨셔지는 바닥에서 등 지지는 개운함을 놓칠 수 없지. 하나 선조들이 여름 햇빛을 튕겨내도록 지혜를 담은 하얗고 깨끗한 한지 벽지, 바람이 통하게 많이 낸 창 등 한옥에 깃든 슬기는 그대로라서 실제로 여름에 집 안이 훨씬 시원하단다. 본래 전통 한옥에서 창은 문의 기능을 겸해 사람이 드나들 수 있게끔 적당한 크기에, 위치는 밑부분은 바닥에 닿지 않고 윗부분은 지붕 선에 닿지 않게 중간쯤에 내어 여름 긴 햇빛은 적당히 차단하고 바람은 잘 들어오게 했다. 마루에 앉아 주인을 닮아 단정한 목가구와 문방사우를 바라보노라니 이름 모를 들꽃과 나무를 좋아해 뜰에 심었다던 선생의 손길 사이 이는 바람이 뺨에 붙는다. “오기도 욕심도 없는 한국미의 성품”, 그가 남긴 문장이 이 집에 산다.

덕수궁 돈덕전

건립 1901년 추정 재건 2023년 건축가 미상

“이 자랑스러운 건물은 완전히 유럽식으로 지었다. 실내 장식은 놀랄 만한 품위와 우아함을 뽐내는데, 파리를 모델로 한 것이다. 접견실은 황제의 색인 황금색으로 장식되었다. 황금색 비단 커튼과 황금색 벽지, 이에 어울리는 가구와 예술품들, 이 모든 가구는 황제의 문장인 오얏꽃으로 장식되었다.” 1905년 여름부터 1년 정도, 원래 대한제국 황실 연회에서 외교관 접대 주례를 책임지던 독일인 손탁이 자리를 비운 동안 업무를 대신한 독일인 엠마 크뢰벨이 기행문 <나는 어떻게 조선 황실에 오게 되 었나?>에 돈덕전에 대해 남긴 묘사다. 문화재청이 발간한 <덕수궁 돈덕전 복원 조사연구>에 따르면 실제로 돈덕전은 길이 127척(약 42.3미터), 폭 95척(약 31.6미터) 가량에 연면적 7백 평의 작지 않은 건물이었다. 구조는 1900년대 프랑스에서 유행한 르네상스와 고딕 양식을 절충한 형태로, 석재 섞인 붉은색 벽돌 조造 2층에 함석 지붕 앞뒤 세 곳에 각기 다른 크기의 튜렛(Turret, 탑처럼 생긴 망루)을 세웠고, 건물 입면에는 상하층 모두 아케이드 Arcade로 뚫린 발코니로 장식되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조사연구 내 기록이 모두 과거형인 이유는 이러한 돈덕전을 일본이 1930년대에 철거했기 때문이다. 고종에 대한 정치적 평가는 차치하고, 그가 근대국가로 나아가 자주독립을 이루겠다는 의지로 특히 외교 공간으로서 힘들인 돈덕전은 그렇게 사라졌다. 이후 2010년대 들어 남은 기록과 터에서 발견된 벽돌과 타일 조각들, 동시대 서구의 영향을 받은 다른 건축을 토대로 재건한 것이 지금의 돈덕전이다. 덕수궁 내 석조전만큼이나 이질적인 돈덕전 발코니를 거닐면 글쎄···, 서양의 중세 사원회랑에서 자주 보이는 양식인 아케이드는 뙤약볕이 내리쬐건 비바람이 몰아치건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쇼핑할 수 있도록 아치 모양으로 마련한 상점가를 뜻하기도 하여 파사주 데 데자르 Passage du Désir, 욕망의 아케이드라 부르기도 한다는데, 탐욕들로 아스라졌던 이곳에 이보다 서늘한 공간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