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의 미학, 포페와 마르코 비체고가 전하는 황금빛 비전
금을 다루는 독보적인 기술로 주얼리의 새 비전을 전하는 이탤리언 공방.
GREAT LEGACY
손가락 굵기 때문에 실제보다 큰 사이즈의 반지를 구매한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때로 손가락에서 헛도는 반지는 얄밉기도 하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죠?” ‘포페(Fope)’ 주얼리를 처음 착용해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같은 반응일 거다. 금으로 만든 보석이 분명한데, 늘어나기 때문이다. 손가락 마디를 부드럽게 지나 둘레에 꼭 맞는 반지를 착용한 기분은 꽤 만족스러웠다.
포페는 움베르토 카촐라(Umberto Cazzola)가 1929년 비첸차(Vicenza)에서 장인 공방으로 시작해 100주년을 바라보는 엄청난 역사를 지닌 이탈리아 브랜드다. 그 오랜 이야기의 배경에는 놀라운 걸작 ‘플렉스잇(Flex’it)’이 있다. 메시 직조 디자인에 미세한 18K 골드 스프링을 삽입해 유연하게 만든 기술로, 포페는 이 특허받은 공법을 통해 오로지 골드로만 신축성 있는 메시를 제작하는 유일한 브랜드로 거듭났다. 디자인 역시 이를 중심으로 다양해졌다. 수년에 걸쳐 종류가 확장되었고, 1980년대 초 출시 이후 메종의 아이코닉 요소로 쓰이는 ‘노베첸토(Novecento)’ 메시도 플렉스잇을 통해 한층 부드러워졌다. 그리고 최근 포페를 대표하는 기술이 하나 더 늘었다. 새로 선보인 목걸이의 진귀한 클래스프 ‘D-클릭(D-Click)’. 로고의 ‘O’ 부분에 세팅한 다이아몬드를 눌러 여는 잠금장치로, 기능적인 역할뿐 아니라 장식적으로 아름답다. 플렉스잇을 적용한 첫 번째 주얼리라는 뜻의 ‘에카(Eka)’와 용접 없이 복잡한 골드 부품을 독창적으로 압착해 만든 노베첸토 메시가 돋보이는 ‘솔로(Solo)’ 컬렉션 목걸이에서 발견할 수 있다.
체인을 테마로 하는 컬렉션만 10가지 넘게 전개하고 있지만 링크의 결합 방식, 두께, 모양이 전부 미세하게 다르다. 예를 들어 ‘파노라마(Panorama)’의 메시가 비교적 넓고 평평해 보일 정도로 얇다면, ‘루나(Luna)’는 현대적인 사각형 메시를 특징으로 한다. 젬스톤을 활용하는 방식도 흥미롭다. 모든 형태의 사랑에 경의를 표하는 반지 컬렉션 ‘소울(Souls)’에는 각기 다른 의미가 부여된 컬러 스톤을 사용한다. 블랙 다이아몬드는 특별함, 에메랄드는 새로운 탄생, 핑크 사파이어는 용서를 뜻한다. 화려한 취향을 지녔다면 젬스톤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상상에서 탄생한 ‘버블(Bubble)’ 반지가 제격이다.
메시라는 한 가지 모티브로 이토록 다양한 주얼리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에 감탄이 나온다. 이 모든 컬렉션은 프로토타입 제작 단계부터 제조 및 배송까지, 여전히 비첸차에 있는 본사에서 자체적으로 이루어진다. 포페의 반지, 팔찌, 목걸이가 여러 개를 한꺼번에 착용해도 조화로운 이유 역시 그곳에 있을 것이다. 고급스러우면서도 다채롭고, 미니멀하면서도 세련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번 경험하고 나면 잊기 힘든 그 착용감만으로도 포페를 찾을 이유는 충분하다.
SILKY TOUCH
“어린 시절 아버지 회사 작업대에 앉아 있곤 했습니다. 모든 것이 시작된 곳이죠. 금을 직접 만지며 무언가를 만들 때의 즐거움을 기억합니다. 이 직업에 대한 열정을 물려주고, 대담하게 꿈을 믿을 수 있는 용기를 주신 것은 아버지였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마르코 비체고(Marco Bicego)’의 창립자 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2대째 활동 중인 주얼러다. 이탈리아 파인 주얼리가 태동한 지역의 유서 깊은 전통을 기반으로, 2000년에 여성의 일상과 함께하는 우아하고 세련된 럭셔리를 위한 브랜드를 시작했다. 그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공장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며 장인들의 다양한 세공 기술을 익혔고, 마침내 자신만의 기술을 개발하게 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코일(Coil)’ 기법이다.
먼저 코어를 중심으로 18K 골드로 이루어진 엄청나게 가느다란 선을 나선형으로 감는다. 가장 중요한 이 섬세한 기본 작업이 끝나면 세대에 걸쳐 장인 기술을 수행해온 전문가가 형태를 잡는다. 코일을 만드는 과정이다. 리본처럼 완성된 유려한 실루엣은 가벼우면서도 견고하다. 이를 능숙하게 비틀어 파도 같은 움직임을 만들어낸 ‘마라케시(Marrakech)’가 마르코 비체고가 맨 처음 세상에 공개한 컬렉션이다. 모듈 디자인의 섬세한 직조가 부드럽고 관능적인 움직임을 뽐낸다.
골드로 만든 입체적인 구슬이 알알이 연결된 팔찌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사막의 풍경과 환상적인 밤하늘을 형상화한 ‘아프리카(Africa)’ 컬렉션이다. 가까이 들여다보니 미세한 줄무늬가 눈에 들어왔다. ‘밀레리게(Millerighe)’라는 르네상스 시대부터 사용한 도구의 이름을 붙인 고대 피렌체의 조각 양식으로, 한 방향으로 얇은 홈을 내어 실크와 같은 촉감을 연출한다. 전부 수작업으로만 구현되는 이 정교한 인그레이빙은 메종이 뿌리내린 비첸차 지역의 금세공 전통과 장인 정신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늘 불완전함 속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움, 자연스러운 몸짓의 진정성, 당당하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용기에 감탄해왔습니다. 자연이 지닌 특별한 불완전함에서 영감을 얻은 주얼리의 유기적 형태를 통해 모든 여성의 개성을 표현하고자 합니다.” 메종의 가장 독특한 컬렉션으로 꼽히는 ‘루나리아(Lunaria)’는 창립자의 미학을 오롯이 반영했다. 자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밀레리게 기법으로 완성한 나뭇잎 모양은 발칸반도에서 자라는 동명의 식물을 떠올린다.
마르코 비체고의 상징과 같은 코일과 밀레리게 조각 기법은 골드 본연의 매력을 이끌어낸다. 수작업으로 구현되는 엄격한 장인 정신은 탁월한 기술력 또한 증명한다. “모든 주얼리는 수작업으로 제작되며, 비첸차 트리시노의 숙련된 장인이 지닌 열정과 헌신을 고스란히 반영해 저마다 완전한 고유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전 세계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무언가를 착용한다는 건 자신을 매일 기념하는 특별한 방법이죠.” (V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