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만에 발견된 쇼팽의 왈츠 악보
섬세한 선율로 듣는 이를 매혹한 ‘피아노의 시인’ 쇼팽의 왈츠 악보가 200년 만에 세상에 공개됐습니다.
미국 뉴욕 모건 라이브러리 & 뮤지엄(The Morgan Library & Museum)의 큐레이터 로빈슨 매클렐런(Robinson McClellan)은 여느 때처럼 입수된 작품을 분류하고 있었습니다. 브람스와 차이콥스키가 쓴 편지, 피카소의 서명이 담긴 엽서, 프랑스 여배우의 오래된 사진 등을 넘겨보던 그는 ‘아이템 147호’를 보고 놀라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가 발견한 것은 가로 13cm, 세로 10cm에 불과한 인덱스 카드 크기의 악보였습니다. 군데군데 눌린 자국이 있는 악보에는 필기체로 ‘Chopin’이라는 이름과 ‘Valse(프랑스어로 왈츠)’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죠. 악보에 써 내려간 작은 음표, 낮은음자리표의 독특한 모양까지 쇼팽의 필적과 닮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매클렐런은 곧 당혹감에 휩싸였습니다. 그가 알고 있던 쇼팽의 곡 중에는 이런 곡이 없었거든요. 그는 악보 사진을 찍어 쇼팽 연구 권위자인 제프리 칼버그(Jeffrey Kallberg) 펜실베이니아 대학 교수에게 보냈습니다. 칼버그 교수 역시 처음 보는 악보였죠.
뮤지엄 측은 악보의 종이 재질, 잉크, 필적, 작곡 양식 등에 대해 감정을 맡겼으며, 그 결과 전문가들은 쇼팽 작품의 자필 악보가 맞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악보의 종이와 잉크가 당시 쇼팽이 쓰던 것과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쇼팽 왈츠 중 공식 출판된 건 오직 8곡뿐이었는데요. 널리 알려진 쇼팽 왈츠에는 1~20번까지 후대에 붙은 번호가 있습니다. 이 외에도 쇼팽 왈츠가 10여 곡 더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악보는 전해지지 않았죠.
이번에 발견된 왈츠는 가단조 왈츠로, 쇼팽이 20대 초반이던 1830~1835년경 작품으로 추정됩니다. 총 48마디의 이 왈츠는 연주 시간이 약 80초에 불과해, 널리 알려진 그의 다른 왈츠보다 훨씬 짧은 축에 속합니다. 뮤지엄 측은 “이 작품은 그가 작곡한 다른 어떤 왈츠보다 짧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작품이며, 작곡가의 완성된 작품에서 기대하는 종류의 ‘단단함’을 보여준다”고 덧붙였습니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랑랑은 <뉴욕 타임스>의 의뢰로 이 왈츠를 직접 연주했습니다. 맨해튼 스타인웨이 홀에서 녹음해 <뉴욕 타임스>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됐습니다. 랑랑은 “이 곡의 거친 도입부가 폴란드 시골의 엄혹한 겨울을 떠오르게 한다”며 “쇼팽이 쓴 가장 복잡한 곡은 아니지만,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쇼팽다운 스타일의 곡 중 하나”라고 말했습니다.
뮤지엄에 따르면, 쇼팽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 발견된 건 1930년대 후반 이후 처음입니다. 덕분에 이번 악보의 발견은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에게 큰 즐거움을 안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