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포와 암석과 버섯이 숨 쉬는 작품의 숲
올해의 프리즈 주간도 역시 뜨거웠습니다. 특히 해외 유수의 미술관 관계자들이 대거 서울을 찾았다는 소문이 들리는군요. 이들 사이에서 마이클 주 전시 <마음의 기술과 저변의 속삭임>이 좋은 전시로 꽤 입소문 났다고 합니다. 국제갤러리 K2 딱 한 관에서만 오는 11월 3일까지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20~30여 년 동안 이어온 작업 세계의 다양한 측면을 응축한 결정체입니다. 말하자면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전방위적 접근을 통해 인식과 정체성, 그리고 경계성 등을 다루어온 마이클 주 작업의 정수가 총체적으로 펼쳐진다고나 할까요. 작가가 이번 전시를 구성하면서 ‘작품의 숲’ 같은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했는데, 과연 K2 공간에 들어서니 아담한 숲에 온 듯, 작품이 모두 한눈에 펼쳐집니다. 전시는 풍경이 되기도, 환경이 되기도 합니다.
마이클 주 전시장을 찾는다면 작품 사이로 난 작은 길을 걸어보길 권합니다. 은색 회화는 유리에 걸려 부유하는 듯 보이고, 은은한 파스텔 톤의 유리는 전시장을 비추며 공간을 확장합니다. 실제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땅에서 잘라낸 작은 암석 덩어리가 중간중간 구두점 역할을 하고요. 투명한 구조물 위에 작은 탄화 버섯이 자라나 숨을 쉬고, 기다란 평면 작품이 벽에서부터 바닥까지 폭포수처럼 흐릅니다. 전시 제목에서 ‘마음의 기술’은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섬세한 기술을 뜻하고, ‘저변의 속삭임’은 말 그대로 땅속에서 자발적으로 형성된 균사체 네트워크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 세계, 우리 일상에서 지금도 보이지 않게 작동하고 있는 수많은 관계와 소통의 흔적, 그 가능성과 잠재성이 예술로 만개하는데, 함축적이고 추상적이며 아름다운 작품들은 꽉 찬 동시에 투명하게 비어 있습니다.
어떤 관객에게는 마이클 주의 이름이 생소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지난 30여 년 동안 국내외 미술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해왔습니다. 특히 2001년에는 서도호 작가와 함께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선정된 바 있죠. 그래서 지금 한국관 30주년 기념 전시인 <모든 섬은 산이다>에도 참여 중인데, 그중에서도 독도의 지표면을 탁본한 실버 페인팅 연작 ‘리미누스’와 날숨을 유리로 캐스팅한 ‘실버 브래스 트랜스퍼’를 선보이고 있죠. 이들 대표작들이 담고 있는 바는 이번 전시에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2017년에 개최한 개인전 이후 작가가 끊임없이 연구하고 실험한 내용, 즉 물질에 대한 탐구, 서사에 대한 탐색의 궤적을 만날 수 있는 것이죠.
다른 미술가와 마찬가지로 마이클 주 역시 본인의 경험에서 주제를 길어 올리고 작업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다른 점이라면, 그는 예술과 과학의 교차점에 서 있다는 건데요. 이번에도 보는 각도에 따라 주변을 다른 색으로 비추어내는 다이크로익이라는 유리, 흰 숯의 일종인 빈초탄으로 만든 탄화 버섯, 유전자 정보를 추출하는 기법인 전기영동법 등 낯선 단어와 재료가 속속 등장합니다. 작가는 재료의 본성 혹은 본질을 정면으로 다루고, 그것이 현실로 구현되는 과정에 집중하기 위해 과학이라는 분야를 적극 활용합니다. 말하자면 과학이야말로 작업을 더 구체적으로, 더 면밀하게 탐구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작업 언어 중 하나인 거죠. 마이클 주는 과학으로 연구한 재료의 물성에 서사를 결합하면서 더욱 풍성한 감각 경험을 불러일으키고자 합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전기영동법을 통해 옥수수 개체의 유전자 정보를 추출하고, 그렇게 만든 패턴을 회화 작업으로 탈바꿈시킵니다. 이 시도는 얼마 전 작고한 그의 어머니이자 생물학자 김필주 박사가 생전에 연구한 내용과 연결되는데요. 더불어 어머니가 물려준 이불로 미국에서 한국인으로서 살아온 본인의 시간과 경험을 조각화한 작품도 선보입니다. 이를 통해 그는 우리 삶의 추상적인, 그리고 실제적인 이야기가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님을 일깨웁니다. 어느 미술가가 상징적이면서도 과학적이고, 물질적이면서도 시적인 그의 전시를 둘러보고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정말이지 마이클 주다운 전시군요!” 예술가적인 시선과 과학자적인 태도, 그리고 문학가적인 마음을 지닌 이 미술가에게는 최고의 찬사가 아닐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