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기모토 히로시: 세상의 본질, 시간, 빛, 색에 관한 인터뷰
DDP에서 열리는 〈까르띠에, 시간의 결정〉전은 신소재연구소의 스기모토 히로시가 디자인했다. 그는 ‘시간’을 비롯한 세상의 본질을 탐구해온 예술가다. 뉴욕 리슨 갤러리에서도 신작을 조명한 개인전이 진행 중이다. 일본 가정집 같은 뉴욕 작업실에서 그를 만나 시간과 빛, 색을 이야기했다.
‘시간’은 역사적 아티스트 스기모토 히로시(Hiroshi Sugimoto)가 반세기가 넘는 동안 천착해온 주제다. 뉴욕의 차가운 겨울을 지나 따스한 기운이 훌쩍 느껴지는 어느 봄날 뉴욕 첼시 스튜디오에서 그를 만났다. 스튜디오 두 블록 옆 리슨 갤러리(Lisson Gallery)에서는 스기모토의 신작을 조명한 개인전 <Hiroshi Sugimoto: Optical Allusion>이, 서울에서는 그가 디자인한 전시 <까르띠에, 시간의 결정(Cartier, Crystallization of Time)>이 열리고 있다. 일본 가정집 정원을 본뜬 듯 고요하고 정갈한 스튜디오 내 다실에서, 바깥 날씨를 그대로 닮은 벚꽃색 재킷을 걸친 스기모토는 일흔여섯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소년 같은 해사한 얼굴로 <보그>를 맞았다.
리슨 갤러리는 1967년 영국 런던에서 오픈한 이후 미니멀리즘, 개념 미술에서부터 아니쉬 카푸어,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아이웨이웨이에 이르기까지 국제 무대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를 소개하며 미술계에서 입지를 굳건히 다져왔다. 올 초에는 사진계 거장 스기모토 히로시를 전속 작가로 영입했다. 1970년대 미국 유학길에 오른 후 스기모토는 미국과 일본을 오가며, ‘시간’을 비롯해 우리를 둘러싼 세상의 본질이 무엇인지 끝없이 질문을 던져왔다. 특히 그의 작업 세계에서 큰 축을 차지하는 흑백사진 연작은 사진이라는 매체가 시간을 포착하는 여러 가능성을 간결하지만 밀도 높게 묻는다. 과거에서 멈춘 듯한 자연사 박물관의 디오라마, 장노출로 오로지 하얀 빛으로 남은 영화관 스크린과 같은 특정 주제를 수년간 파고드는 것이다.
이번 뉴욕 전시는 그가 2000년대 초반부터 끊임없이 탐구해온 빛의 성질을 ‘색’으로 다룬다. ‘시각적 암시’로 풀이되는 전시 제목은 작가가 오랜 시간 천착해온 사진 매체에 대한 통찰을 함축한다. 모든 개인이 색상을 생리적, 문화적으로 다르게 인식하기 때문에 사진은 궁극적으로 진실에 대한 주관적 해석일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현재진행형 질문이다.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작업한 컬러사진 연작 ‘Opticks’를 위해 스기모토는 직접 고안한 프리즘을 이용했다. 빛의 스펙트럼을 굴절시켜 눈에 보이는 색의 스펙트럼으로 전환한 뒤,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그 빛의 일부를 촬영한다. 특정 색을 담아내기 위해 자연의 빛을 기다리던 그의 시간이 전시장의 색으로 변모한 것이다.
치밀한 계산으로 이뤄진 기하학 형태의 조각, 펼쳐진 자연과 모던한 구조물 사이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건축물이 그 예다. 2008년 건축가 사카키다 도모유키(Tomoyuki Sakakida)와 함께 설립한 건축 사무소 신소재연구소(New Material Research Laboratory)는 그의 비전을 공간으로 가시화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해왔다. 특히 서울 DDP에서 열리는 전시는 까르띠에의 젬스톤과 거칠어 보이는 돌을 대비시키고, 한국 전통 직물 ‘라(羅)’의 제작 방식을 복원해 전시에 활용하며 서울이라는 특수한 문화적 맥락에서 시간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그렇다면 스기모토의 단어로 풀어내는 ‘시간’은 어떤 의미일까.
팬데믹 이후 첫 뉴욕 전시로, 며칠 전 리슨 갤러리에서 개인전 오프닝이 있었다. 소감이 어떤가.
최근 합류한 리슨 갤러리에서 선보이는 첫 전시다. 새로운 가족에게 내 마음을 보여줄 기회였다. 전시 준비 자체로도 매우 즐거웠다.
전시장 벽면의 사진 작업뿐 아니라 중앙에 있던 장비가 눈에 띈다.
전시에서 선보인 연작 ‘Opticks’ 작업에 실제로 활용한 프리즘이다. 창을 통해 실내로 내리쬐는 자연광은 이 장치를 통과하며 여러 색으로 변모한다. 프리즘으로 굴절돼 특정 표면에 색으로 내려앉고 빛을 촬영했다. 결과물은 꽤 회화적이다. 다만 화가는 물감이라는 안료를 사용하지만, 나는 자연의 색을 사진으로 직접 옮겨온다. 회화적인 사진(Painterly Photography)이라 할 수 있다.
실제 사진을 가까이서 보면 미묘하게 뭉뚱그려진 색상이 브러시 스트로크 같은 효과를 자아낸다. 당신은 오랫동안 흑백사진에 집중하지 않았나. 왜 색에 관심을 갖게 됐나.
이전엔 완벽한 색맹이었으니까.(웃음) 아이작 뉴턴의 연구를 접하고 영감을 얻었다. 일본 고미술품을 보기 위해 방문한 전시장에서 1704년 출간한 뉴턴의 저서 <Opticks>를 우연히 맞닥뜨렸다.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초판본을 펼쳐 보곤 곧 매료됐다. 빛의 본질을 발견하기 위한 그의 여정을 담은 상세한 텍스트와 이미지 때문이었다. 그 후 책에 언급된 장치를 직접 개조해 사진 작업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뉴턴의 과학적 발견을 경험하고자 했다. 1세기 이후에야 카메라가 발명됐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사실 그의 연구는 빛의 성질에 대한 초기 연구이자 물리학의 시초다. 카메라의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빛의 원리를 들여다봐야 하지 않겠는가. 색에 대한 관심은 내가 구사해온 기법의 기원을 찾기 위해 거슬러 올라간 결과다.
그림자의 색조에 주목한 2004~2006년 연작부터 색에 대한 관심이 옅게 드러난다. 본격적으로 ‘Opticks’ 연작을 작업한 것은 2018년이다.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린 특별한 이유가 있나.
2000년대 초 연작은 일종의 오리지널 스터디였다. 항상 내 아이디어를 표현하기 위한 최선의 방식을 연구하는 편이다. 기술 발전으로 오리지널 폴라로이드 필름을 스캔하고 확대한 뒤 디지털 프린트가 아니라 아날로그 C-프린트 방식으로 인화할 수 있게 됐다. (스기모토는 천천히 다실 벽에 걸린 짙은 청색의 ‘Opticks 67’(2018)을 가리키며) 이런 연유로 시작해 현재까지 오는 데 20여 년이 걸렸다. 그 과정에서 에르메스와 협업해 이 이미지를 실크 스카프로 구현한 리미티드 에디션을 제작하고 전시 형태로 선보이기도 했다.
‘Opticks’ 연작은 모두 정사각 프레임을 지닌다. 또한 사진에 종종 드러나는 색과 어둠의 경계는 1980년대 본인의 초기작 ‘Seascapes’의 수평선을 닮았다. 구성 측면에서 미술사적 선례 혹은 본인의 이전 작품을 참조했나.
사실 이 형태는 선택이라고 하기보다 주어졌다. 폴라로이드 필름의 프레임이 정사각형이기 때문이다. 모더니스트 화가들은 그가 바라보는 세상을 각기 다른 시각언어로 풀어내지만 나는 좀 더 직접적으로 색의 원천인 빛을 다룬다. 구상이 아닌 추상으로 뉴턴의 연구를 시각화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수평선이라는 점에서는 초기작과 유사점이 있을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구성이기도 하고.(웃음) 그러나 ‘Opticks’에서 보이는 검은 부분은 사실 폴라로이드 필름의 흰색 테두리로 사진에 담긴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전시장 한쪽에 콘스탄틴 브랑쿠시 작품을 연상시키는 작품이 보인다. 기하학적 형태의 조각 ‘Mathematical Model 025’(2023)는 사진과 어떤 관련이 있나.
조각 형태를 띠지만 조각은 아니다. 내가 직접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공식을 입력하고 기계가 형태를 조형하는 과정은 근대 초기 물리학 연구에 가깝다. 수학자들은 자연을 이해하고자 눈에 보이는 현상을 자연의 법칙으로 이뤄진 수식으로 치환하고자 했다. 뉴턴의 또 다른 저서 <Principia>(1687)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번 전시는 자연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뉴턴의 연구에 관한 두 가지 결과물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조각뿐 아니라 일본 나오시마의 ‘Go-o Shrine’(2002) 프로젝트를 계기로 건축으로 작업 세계를 확장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후 건축 사무소 신소재연구소를 설립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사실 건축가가 되려는 의도는 없었다. 공간을 디자인해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이 끊임없어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됐다. 2009년 오다와라 예술 재단(Odawara Art Foundation) 건물같이 규모가 커짐에 따라 실무를 담당할 건축가들과 협업이 필요했다. 나는 주로 공간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고 종종 핸드 드로잉으로 이를 그려낸다. 케이스마다 협업 형태는 다르지만 팀을 이뤄 함께 공간을 구축한다.
<까르띠에, 시간의 결정> 전시 디자인을 맡은 이유가 있나.
까르띠에 재단과 긴 인연이 있다. 2004년 파리 까르띠에 재단에서 열린 개인전 <Étant donné: Le Grand Verre>에서부터 만남이 이어졌다. 이번 프로젝트는 도쿄 전시를 위해 처음 디자인했고, 서울 전시의 경우 자하 하디드의 건축물 DDP 공간의 특수성에 맞춰 수정했다. 물론 까르띠에의 젬스톤은 ‘시간의 결정체’라는 큰 주제는 유지됐다. 바늘이 거꾸로 가는 앤티크 시계를 전시장 입구에 설치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런던 하워드 갤러리에서 열린 내 개인전 제목도 ‘Time Machine’이다.
본인 소장품도 함께 전시했다.
내 아이들처럼 여기는 수집품이다. (도쿄 전시에도 포함된) 이곳 다실에 걸린 13~14세기 불교 족자 ‘Bodhisattva Jizõ’처럼 말이다. 서울 전시를 위해서 다시 한번 수집품을 선별했다. 까르띠에 젬스톤이 오랜 시간이 담긴 물질의 결정이라면, 내 수집품 역시 일종의 시간의 결정체가 아닌가 싶다.
관람객이 <까르띠에, 시간의 결정> 전시를 어떤 단어로 기억하면 좋겠는가.
두 단어다. 아름다움 그리고 시간의 흐름(Passage of Time). (V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