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봄/여름 파리 패션 위크 DAY 4
파리의 넷째 날은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만나는 설렘으로 가득 찼습니다. 미겔 카스트로 프레이타스가 뮈글러를, 마크 토마스가 까르벵을 선보이는 날이었기 때문이죠. 게다가 요즘 우리를 실망시키는 법이 없는 꾸뛰르의 제왕 스키아파렐리의 마무리까지, 모든 면에서 신선했던 4일 차 파리로 함께 가보시죠.
뮈글러(@muglerofficial)
미겔 카스트로 프레이타스의 뮈글러가 공개되었습니다. 디올, 드리스 반 노튼, 랑방, 스포트막스를 거친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는 뮈글러에 자신의 스타일을 자연스럽게 섞었습니다. 파리 11구에 위치한 브루탈리스트풍의 지하 주차장은 1990년대가 떠올랐으며, 정밀하고 엄격한 뮈글러의 미래를 선보이기에 적합했죠. 그레이, 핑키 베이지 등의 모던한 컬러로 표현된 하우스의 아이코닉한 모래시계 실루엣의 차갑고 딱딱한 공간과 대비돼 그 특징을 더 명확하게 드러냈죠. 또한 뮈글러 특유의 정교한 수작업을 반영한 정교한 주얼 장식, 풍성한 모피 재킷, 깃털 장식까지, 미겔이 포착한 티에리 뮈글러의 면모를 확대해서 볼 수 있었습니다.
미니멀한 보디수트 위에 깃털이 달린 스커트, 20세기 중반의 꾸뛰르풍 드레이핑, 블랙 페이턴트 소재의 허리 라인이 과장된 코트와 드레스, 내년 봄의 필수 요소인 오프숄더 네크라인, 장갑이 달린 금빛 팬츠 수트 등 <보그 런웨이>의 에디터들은 뮈글러의 모든 룩이 레드 카펫을 휩쓸 것으로 예측했고, 그에 동의합니다.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15명 중에서 미겔이 가장 주목받은 인물은 아니었지만, 모든 쇼가 끝난 지금 그가 남긴 인상이 세 손가락에 꼽힐 만큼 강렬했다고 말하고 싶군요. 뮈글러가 사랑한 우주의 별빛까지, 과하지 않고 조화로웠던 미겔의 룩을 만나보세요.
스키아파렐리(@schiaparelli)
일상과 런웨이의 경계가 허물어진 지금, 꾸뛰르처럼 과감한 스타일이 거리를 활보하는 것도 나쁘지 않죠. 스키아파렐리는 그 지점을 정확히 짚어냅니다. “초반엔 기성복이 너무 꾸뛰르 룩처럼 보인다는 내부 논의가 많았어요. 그런데 이제 상황이 바뀌었죠. 그때는 약점처럼 보인 게 지금은 클라이언트에게 어필하는 슈퍼파워로 작동하고 있어요.” 다니엘 로즈베리가 이런 자신감을 내보일 수 있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날 밤 퐁피두 센터에서 열린 쇼는 모두에게 옷이 주는 황홀경을 경험하게 했고, 아름다움의 무아지경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죠.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처럼 어둠이 깔린 파리의 밤, 하우스의 아이덴티티인 초현실적인 금빛 장신구가 빛났습니다. 어깨와 힙의 패딩을 바깥쪽에 배치한 스커트 수트를 시작으로 러플과 페플럼이 잔뜩 달린 니트 스웨터가 등장했고 도트 컷아웃 원피스에 시선을 빼앗겼습니다. 이날 다니엘은 처음으로 바이어스 커팅에 도전했다고 밝혔는데요, 결과물에서는 그런 티가 전혀 나지 않았습니다. 드레스의 찢어진 디테일은 엘사 스키아파렐리와 살바도르 달리가 함께 만든 아카이브 드레스에 대한 오마주였고요. 붓 머리 수천 개를 이어 만든 스커트 수트, 붓털만 모아 붙인 시스루 드레스. 드로잉으로 누드 실루엣을 그려 넣은 니트 드레스까지, 퐁피두 센터라는 장소와 매우 적절하게 이어졌죠. 무엇이든 그리고, 무엇이든 입어도 되니까요.
까르벵(@carven)
“우리가 작은 메종이라는 건 알아요. 작지만 강력하죠.” 마크 토마스가 까르벵에서 첫 단독 데뷔 쇼를 앞두고 말했습니다. 80년 역사가 그의 뒷배를 든든히 받쳐주고 있다는 듯이요. 이 쇼는 사실상 토마스의 첫 까르벵 쇼는 아닙니다. 루이스 트로터(보테가 베네타로 갔습니다)의 재임 기간 내내 그녀와 함께했고, 이번 컬렉션을 통해 마크의 비전이 전면에 드러났죠.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전임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자신의 것을 찾지 못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지만 그는 이것을 정면으로 돌파했습니다. 실루엣으로요. 몸에 더 밀착되는 테일러링과 파리지앵 특유의 자연스러운 느슨함(Déshabillé, 데자비예)이 스며든 의상이었습니다.
마크는 ‘집’이라는 개념을 차용해 베개처럼 푹신한 플립플롭, 레이스 장식 슬립 드레스에 레이어드한 이너, 프렌치 침구와 식탁보에서 영감을 받아 의상으로 해석한 테마가 등장했습니다. 걸을 때마다 나부끼는 패널이 달린 팬츠 등에서 부드럽고 관능적인 느낌이 있었죠. 일부는 새틴을 댄 비닐 소재로 변주해 더 과감한 분위기를 냈고, 여기에 까르벵의 유산인 난초 모티브를 미니멀하게 차용했고요. 시그니처인 조각적인 ‘에스페란토(Esperanto)’ 실루엣을 변주한 사파리 재킷도 있었죠. 그가 그려갈 까르벵이 어떤 모습일지 첫 단추를 확인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