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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룬 팬츠에서 노 팬츠까지, 혼돈의 시대인가, 자유의 시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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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바지에 무슨 일이?

No Rules, No Pants

토요일, 친구와 함께 호숫가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근처에서 프랑스와 영국, 미국 등 갑작스럽게 불안정해진 서구의 정치 상황에 대해 토론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나는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최근 바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헤아리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각자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있다. 나는 호숫가의 목가적인 분위기 속에서 조나단 앤더슨의 2024 F/W 시즌 로에베 쇼를 떠올렸다. 그 쇼는 시골 저택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 컬렉션에서 눈에 띈 것 중 하나는 뷔페만큼 다양한 팬츠 실루엣이었다. 풍선처럼 부푼 벌룬 형태의 카고 팬츠, 펄럭이는 하렘 팬츠, 허리와 종아리 부분은 좁으면서 허벅지 부위에 드라마틱한 볼륨을 연출해 ‘위버조퍼스(Überjodhpurs)’라는 명칭이 딱 어울리는 팬츠 등. 이것도 극히 일부다.

이번 시즌 앤더슨만 팬츠의 전 영역을 탐구한 것이 아니다. 보테가 베네타는 좁고 긴 실루엣의 스토브파이프와 튤립 형태, 크롭트 플레어, 슬라우치 등을 제시했다. 셰미나 카말리의 끌로에 데뷔 컬렉션에는 니트 마이크로 쇼츠부터 프린지 가죽 팬츠가 시폰 셔링 형태로 이어지는 하이브리드 타입까지 등장했다. 한편 결단력 있는 디자이너도 있다. 구찌의 사바토 데 사르노는 쇼츠에 집중했으며, 사카이의 아베 치토세는 컬렉션에 팬츠를 단 한 벌도 포함시키지 않았지만, 모든 의상을 니콜 펠프스가 명명한 팬타부츠(Pantaboots)에 매치했다. 이 부츠는 팬츠와 부츠가 결합된 형태로 무릎 위까지 올라오는 바지처럼 보이는 부츠다. 하지만 가장 신선하면서도 논란이 많았던 런웨이 아이템은 단연 미우미우의 로우 라이즈 스키니 진이었다. 이 팬츠는 2004년의 유령처럼 나타나 배기 팬츠 트렌드에 빠져 있던 우리를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쇼가 열리는 시기에 영화 <러브 라이즈 블리딩> 홍보 투어 중이던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바지를 입지 않은 거나 다름없는 모습으로 등장했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세상에 확산 중인 팬츠 카오스에 대해서다. 우리는 더 이상 팬츠를 믿을 수 없게 됐다. 한 가지 스타일의 팬츠만으로는 옷장을 구성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피비 파일로가 2013 봄/여름 시즌 셀린느 쇼에서 선보인 펄럭이는 새틴 팬츠에는 앞으로 옷 입는 방법에 대한 명확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그 메시지는 팬츠에 버켄스탁을 신는 것 같은 무심한 태도에 대한 것이었다. 이 팬츠들은 일종의 기초를 세웠다. 나 또한 조나단 앤더슨의 로에베 의상을 좋아하고 내 옷장을 그의 옷으로 채우고 싶지만, 그가 이 시대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여겨지는 것은 아마도 그런 식의 어떤 메시지도 전달하길 거부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자신의 주제에 대해 치밀하게 탐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컬렉션이 패션계 전반을 상징하는 방식으로 파편화되어 있다는 뜻이다. 오늘날 모든 의상은 일회적이다. 기초는 무너졌다. 그리고 허물어진 잔해 가운데서 상황은 정말, 많이 이상해지고 있다. 쉽게 말해 팬츠에 일어나고 있는 일은 서구의 정치 상황과 유사하다. 시인 예이츠의 시구절을 인용하자면, “순전한 무질서가 세상에 풀어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팬츠는 우리 모두를 결집시킬지도 모른다.

‘노 팬츠’ 유행에 대한 의견을 구하기 위해 나는 스타일리스트 해리 램버트(Harry Lambert)에게 질문했다. 그가 스타일링을 담당하는 엠마 코린은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뉴욕 시사회에 니나 리치 레오타드 차림으로 등장했다. “설명해달라고요?” 램버트가 웃으며 말했다. 뭘 설명해야 할까? 코린은 미우미우 2023 가을/겨울 컬렉션 런웨이에 스팽글 장식의 핫팬츠 차림으로 이 유행의 시작을 알렸고 이 룩은 시그니처 룩이 되었다. 그렇긴 하지만 그녀는 오버사이즈 트렌드도 좋아한다. 램버트도 이 스타일을 즐긴다. “오버사이즈 테일러링과 슬라우치, 배기 스타일의 여유로운 느낌을 좋아하죠.” 램버트는 스키니의 부활에 대해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그런 바지를 입으면 너무 덥고 다른 사람 시선이 신경 쓰이더라고요.”

램버트와의 대화는 우리가 팬츠에 대해, 그리고 정치에 대해서도 가지는 세 가지 본능을 요약한다. ‘노 팬츠’는 급진적이다. 로에베 위버조퍼스나 사카이 팬타부츠처럼 관습을 뛰어넘어 사고 실험을 시도하려는 의도와도 이어진다. 왜 세상은 달라질 수 없는 걸까? 바지를 입지 않는다면? 한편 스키니 팬츠의 부활은 일종의 반작용이다. ‘여성의 재생산 권리를 빼앗자’는 의미가 아니다. 상황이 정체되었다는 걸 인식하게 될 때,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 확신이 없을 때 익숙한 것으로 후퇴하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오늘날 문화적으로도 이와 유사한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과거 히트작의 리부트와 리메이크, 오래된 히트곡을 샘플링한 노래, 전통적인 성 역할의 미화 같은 것들 말이다. 이는 전부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의도다. 램버트가 언급한 여유로운 느낌도 원하는 대로 하길 바라고 안락함을 갈구하는 보편적 욕구의 연장선이다. 그리고 이는 냉전 이후 공적인 격식에 대한 요구를 완전히 대체했다. 혹자는 그것을 해방으로 보고 혹자는 타인에 대한 존중이나 공동 책임에 대한 약속이 사라졌다고 볼 수도 있다. 나는 두 가지 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여기지만, 균형이 크게 어긋난 상태라고 본다.

“최근 유행에 대한 담론은, 입고 싶은 것은 뭐든 입어도 되고 그래서 혼돈 그 자체라는 겁니다. 이 상황은 1960년대를 떠오르게 하죠. 실제로 과거에는 그랬어요. 모든 것이 동시에 공존했습니다.” 팟캐스트 ‘아티클스 오브 인터레스트(Articles of Interest)’의 진행자 에이버리 트루펠먼(Avery Trufelman)은 이렇게 말했다. 그녀의 팟캐스트는 옷 그리고 옷이 어떻게 우리 삶과 세상에 연관되어 있는지 다룬다. 그녀는 내게 토머스 프랭크(Thomas Frank)의 저서 <The Conquest of Cool>을 추천했으며 이 책은 광고주와 기업이 어떻게 1960년대의 초개인주의를 조장했는지 추적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들이 눈에 띄기 위해서 더 특이한 것들을 더 많이 구입할수록 기업의 수익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결국 거품은 가라앉았다. 패션은 더 보수적으로 바뀌었고 더 획일화되었다.

우리도 그런 교정의 시기에 임박했고 교정 대신 완전한 패션의 붕괴를 겪었다. 코로나와 스웨트팬츠의 군림이다. 어쩌면 지금 팬츠에 일어나는 일은 사람들을 스웨트팬츠에서 벗어나 목적과 엄격함, 상상력을 가지고 옷을 입는 습관으로 되돌리려는 흔들리는 노력일지도 모른다. 다양한 방식으로 급진적인 스타일, 익숙한 스타일, 편안하고 넉넉한 스타일로 그들을 유혹하는 것일까?

팬츠에 일어나고 있는 이 모든 혼돈 덕에 수혜를 누린 이는 프랭키샵(The Frankie Shop)의 설립자 가엘 드레베(Gaëlle Drevet)다. 나는 첫 백신주사를 맞을 때쯤 인스타그램에서 그녀의 스토어를 발견했고, 포스트 스웨트팬츠 시대를 시작하기에 완벽한, 넉넉한 실루엣의 남성복 스타일 팬츠를 주문했다. 지구상의 다른 모든 패션 우먼들도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지금도 제일 잘 팔립니다.”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드레베가 말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다양한 핏으로 진화했습니다.”

사실이다. 프랭키샵의 인스타그램 피드에는 정기적으로 새로운 팬츠 스타일이 올라온다. 우리가 대화를 나눈 날, 드레베는 새 팬츠를 제작했으며 “허리선이 아주 낮은 슈퍼 로우 라이즈에 기존 스타일과는 매우 다른, 실험적인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녀는 140만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대상으로 쇼츠에 대한 타깃 조사를 실시해왔다. “마이크로 쇼츠도 있고, 하이 웨이스트, 로우 웨이스트, 니트 소재, 비치는 소재의 쇼츠도 있습니다.” 드레베가 말했다. “어디든 잘 어울리는 팬츠가 있었다면 그것만 팔았겠죠.” 안타깝게도 한번 깨진 것은 절대 완전하게 되돌릴 수 없다. 아니면 가능할까?

알리사 재커리(Alissa Zachary)는 하이 스포츠(High Sport)의 설립자이며 이 브랜드는 킥 플레어 팬츠로 유명하다. 하이 스포츠는 단순한 개념에서 탄생했다. 여자들이 입고 싶어 하는 팬츠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피비 파일로가 론칭한 브랜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피비 파일로는 셀린느 시절, 세상이 이치에 맞게 돌아가고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는 팬츠를 만들었다. 과장된 표현처럼 들릴지 몰라도, 실제로 정말 그랬다. 만약 지금 당장 갖고 싶은 팬츠를 사기 위해 8,900달러를 쓸 수 있다면, 시폰 위에 길고 가늘게 자른 나파 가죽을 이어 붙인 피비 파일로의 레이저 스트립 팬츠를 살 것이다. 슬프게도 살 수 없지만 말이다. 하이 스포츠의 킥 플레어 팬츠는 정확히 그 가격의 10분의 1이지만 여전히 비싸다. 하지만 재커리가 지적했듯 이 팬츠는 유행을 타지 않는다. 하이 스포츠는 이 스타일을 2021년에 처음 선보였고 오늘도 팔고 있으며,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태양이 부풀어 올라 지구를 삼킬 때까지 혹은 거의 그와 유사한 시기가 올 때까지 계속 판매할 거라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하이 스포츠의 킥 플레어 팬츠는 레깅스처럼 입을 수 있지만 세련돼 보인다. 코튼 라이크라 니트 소재로 만들어 정장처럼 형태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한 동시에 착용감은 부드럽다. 단추나 지퍼 없이 그냥 쑥 입을 수 있어서 어떤 체형에도 잘 어울린다. 이 바지를 입으면 과시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서 단정해 보인다.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이사한 후 요가 팬츠에 플립플롭을 신고 돌아다니는 여자들을 보면서 ‘이건 아니지’라고 판단했어요.” 재커리가 회상했다. 그녀는 하이 스포츠를 론칭하기 전, 더 로우에서 10년간 일했다. “단정해 보이는 걸 좋아하지만, 로스앤젤레스의 라이프스타일도 좋아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애슬레저 정신을 좀 더 세련되게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죠.”

헤겔 철학 용어로 설명하자면 하이 스포츠의 킥 플레어 팬츠는 변증법적으로 역사적 발전을 추진하며, 공적인 격식과 자기만족적인 편안함이라는 상반된 개념을 새로운 형태로 결합시켰다. 정치인들이여, 주목하라. 어제의 답으로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식함으로써 재커리는 우리 시대의 통합된 팬츠를 실현했다.

하지만 그게 아닐 수도 있다. 오늘날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까? 팬츠나 정치에서 말이다. 이 기사를 쓰고 있는 나는 이 기사가 담긴 잡지가 판매대에 꽂힐 때까지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내가 확신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새로운 세상이 오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그 과정에 있으며 배는 항구를 떠났다. 아마도 그것이 ‘노 팬츠’가 의미하는 바일 것이다. 만약 미지의 바다로 나아가고 있다면, 가볍게 여행하는 것이 최선이다. (VK)

턱시도 재킷과 식물 패턴이 돋보이는 하렘 팬츠, 부츠는 로에베(Loew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