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진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곳
짙푸른 바닷속에서 고래 곁을 맴돌고, 노예무역 역사의 현장에서 인류의 미래를 가늠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6시간 비행 끝에 닿은 섬, 세인트헬레나에서 여행의 진짜 의미를 물었다.
세인트헬레나(Saint Helena)의 세 봉우리가 낮고 얕게 깔린 구름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이륙한 지 6시간 만이다. 이곳에 닿기 위해 6일 동안 배를 타야 했던 2017년에 비하면 찰나의 시간이다. 세인트헬레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해안으로부터 2,000km 떨어져 있고, 브라질까지 이르는 경로의 중간 지점에 솟아 있다. 바람에 깎일 대로 깎인 이 현무암 섬은 어센션(Ascension)과 트리스탄다쿠냐(Tristan da Cunha)와 함께 자매 섬으로 일컫지만 영국 해외 영토로 묶여 있을 뿐 세인트헬레나야말로 지구상에서 가장 외딴 섬이다. 신비로운 안개에 둘러싸인 채 바다 위로 불쑥 떠오른 섬, 세인트헬레나에서 어떤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듣게 될까?
유배된 나폴레옹이 최후를 맞이한 섬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역사적 맥락에서만 이 섬을 이해하는 것은 경이로운 자연을 간직한 이곳의 진정한 매력을 외면하는 일이다. 1836년 찰스 다윈이 세계 일주를 위한 항해 도중 이곳에 상륙했을 때, 그는 초현실적인 생물 다양성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세인트헬레나를 “경이로운” 곳이며,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곳이라고 묘사했다. 정확한 통찰이었다. 샌프란시스코만 한 크기의 이 섬에는 무려 500종이 넘는 고유 동식물이 서식한다. 진화론의 무대가 된 갈라파고스 제도보다 제곱킬로미터당 25배나 서식 밀도가 높다.
약 700만 년 전, 세인트헬레나는 화산 폭발로 해발 800m까지 급격히 솟아오른 적이 있다. 활주로에 발을 내딛는 순간, 산꼭대기에 와 있는 듯 맑고 차가운 대기와 남대서양에서 밀려온 짭조름한 안개가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나는 곧장 북쪽으로 향했다. 굽이친 길을 따라 달리기 시작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섬의 수도 제임스타운(Jamestown)이 모습을 드러냈다. 좁고 가파른 협곡 사이에 은닉한 조지 왕조 시대 건물들이 섬 고유의 독특한 지형을 더 명징하게 부각하고 있었다.
머물 수 있는 숙소 리스트는 단출하지만, 그만큼 개성이 뚜렷하다. 그중 옛 장교 숙소를 개조한 맨티스(Mantis)에 머물기로 했다. 절제된 편안함, 넉넉한 테라스, 담백한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좀 더 본격적인 휴식을 원한다면, 제임스타운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자리한 팜 로지(Farm Lodge)에 머무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녹음이 우거진 약 4만㎡ 크기의 열대 정원에 둘러싸인 팜 로지에서는 매미의 합창 소리와 낡은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이 BGM을 이룬다. 그러다 베란다에 걸린 종이 울리면, 주인 스티븐(Stephen)과 모린(Maureen) 부부가 직접 키운 재료로 만든 다섯 가지 요리가 하나씩 테이블 위에 오른다.
세인트헬레나의 인구는 고작 4,000명 남짓이다. 스스로를 ‘세인트(Saint)’라고 즐겨 부르는 이곳 주민들은 소박하지만 놀라울 만큼 완전한 자급자족의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나는 이 섬의 프랑스 명예 영사인 미셸 당쿠안 마르티노(Michel Dancoisne-Martineau)와 함께 나폴레옹의 발자취를 따라 섬을 터덜터덜 거닐었다. 나폴레옹의 첫 거처였던 브라이어스(Briars)는 클로버색 벽과 높다란 창, 금빛 장식을 두른 벽난로가 어우러진 우아한 파빌리온이다. 그에 비해 마지막 거처였던 롱우드 하우스(Longwood House)는 으리으리한 저택이다. 유배라기엔 꽤 호사스러운 삶으로 보였다. 이날의 여정은 ‘무덤의 계곡(Valley of the Tomb)’에서 갈무리되었다. 1821년 나폴레옹이 사후 처음으로 묻힌 곳이다. (그의 유해는 19년 뒤 프랑스로 돌아갔다.) 세인트헬레나에 남아 있는 프랑스 유산을 지키는 큐레이터인 당쿠안 마르티노는 섬의 토착 식물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타고난 예술가이기도 하다. 그의 식물화는 제임스타운의 옛 발전소를 개조한 문화유산 박물관에서 직접 구입할 수 있었다.
한편 지난여름까지 세인트헬레나의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던 마틴 헨리(Martin Henry)는 공직에 있는 동안 이곳에 전기 자전거 투어 회사를 창립했다. 그의 회사 이-커넥트(E-Connect)는 주민들이 활기찬 아웃도어 라이프를 즐길 수 있도록 지원하면서도, 즐길 거리를 찾아 헤매는 섬 관광객을 환대하기 위해 탄생했다. 헨리는 2014년 섬에 모바일 폰 서비스가 도입된 이후 수입 가공식품 의존도가 높아지고, 앉아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 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만성질환자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고 덧붙였다. “그런 현상은 우리가 자연, 장소와 맺었던 본래의 연결 고리를 망가뜨렸어요. 우린 풍경 속으로 곧장 걸어 들어갈 수 있는 감각을 잃어버렸죠. 그 감각을 되찾게 하고 싶었습니다.” 헨리의 철학은 전체론적이다. “내면의 환경, 즉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돌보지 않는다면, 외부 환경도 온전히 보살필 수 없습니다.”
헨리는 섬의 식생활을 개선할 방법도 궁리했다. 그는 세인트헬레나 대부분의 가정에서 과실나무 한 그루쯤은 키울 만한 작은 텃밭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그런 라이프스타일은 팜 로지에서 적극적으로 추진 중인 자급자족의 정신을 고스란히 이어받는다. 커피 애호가들은 랭엄스(Wranghams)를 주목한다. 다이애나스 피크 국립공원(Diana’s Peak National Park) 자락에 안착한 이 우아한 레스토랑에서는 오너인 데비(Debbie)가 오픈 키친에서 건강한 요리를 선보이고, 1733년 예멘에서 들여와 변함없이 사랑받아온 아라비카 품종을 직접 재배한다. 로스팅은 그녀의 남편 닐(Neil)의 몫이다.
매일 아침 내가 풍족한 과일 플래터와 풀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를 뷔페 스타일로 만끽할 때쯤, 맨티스 호텔의 정원사들은 캐슬 가든(Castle Gardens)의 히비스커스 토피어리에 집중하며 일찍 하루를 시작했다. 맨티스 호텔은 세인트헬레나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자 세계에서 가장 긴 직선 계단인 야곱의 사다리(Jacob’s Ladder) 아래 자리한다. 성서 속 이름이 암시하듯, 이곳의 오르막은 아찔할 만큼 가파르다. 45도 각도로 솟은 경사로에 699개 계단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계단에 오른다면, 한낮의 열기가 가라앉고 계곡이 가장 부드러운 색조로 물드는 일출이나 일몰 무렵을 추천한다. 서쪽 비탈을 오르면 시야는 곧장 제임스타운 너머 하얗게 칠한 요새와 만으로 뻗어갈 것이다. 맑은 날이면 수면 아래 드리운 파파누이호의 실루엣에 금세 시선이 닿는다. 1911년 파파누이호가 이곳에서 침몰한 후 매주 금요일 난파선 위를 헤엄쳐 가는 의식이 치러지는데 주민들은 세인트헬레나에서만 볼 수 있는 넙치, 흰 돔, 놀래기, 복어, 그리고 금빛나팔돌산호 군락을 찾아 물속을 누빈다. 지구 어디서도 볼 수 없는 50여 종의 해양 생물이 이곳에만 서식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물고기인 고래상어를 만나기 위해 바다로 나갔다. 세인트헬레나는 44만5,000㎢ 규모의 해양 보호 구역 중심부에 자리한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영양이 풍부한 바다는 푸른바다거북, 쥐가오리, 귀상어의 서식지이자 혹등고래의 주요 이동 경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배는 파도 속에서 춤추는 범열대알락돌고래 무리에 둘러싸였다.
고래상어는 워낙 깊은 바다를 누비는 습성이 있어 연구하기 어렵지만, 세인트헬레나에서는 이 온순한 거대 동물을 분석하는 데 필요한 ‘잃어버린 퍼즐 조각’을 찾을 수 있다. 세인트헬레나 내셔널 트러스트(Saint Helena National Trust)의 해양 보전 프로젝트 매니저 케니키 앤드루스(Kenickie Andrews)가 설명했다. “11월부터 3월까지는 아주 희귀한 현상이 펼쳐집니다. 성체 암수 고래상어가 대규모로 모여들거든요. 이처럼 암수가 함께 보이는 경우는 흔치 않아서 연구자들은 이들의 행동 양상과 잠재적 번식 활동을 연구할 특별한 기회를 얻게 됩니다.” 이런 사실은 생태 관광의 가능성까지 대폭 확장했다. 물론 외부인의 모든 관찰 활동은 신중하게 운영된다. 접촉 금지, 안전거리 유지, 상호작용 시간 제한 등 엄격한 규제를 기반으로 말이다.
마침내 선장이 완벽한 타이밍을 포착했다. 물살을 가르는 삼각형 등지느러미가 유유히 떠오른 순간, 사인을 받은 나는 조용하지만 재빨리 바닷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내가 만난 5m 길이의 고래상어는 크기가 지금보다 세 배 이상 더 자랄 수 있는 종의 특성을 고려하면 왜소한 편이었다. 플랑크톤을 찾아 우아하게 유영하는 고래상어의 모습을 고요히 바라보는 일 외에 나는 별다른 일은 하지 않았다. 그러다 오므린 입술 사이로 수천 개의 작은 이빨이 희미하게 보였다. 고래상어는 천성적으로 호기심이 많지만, 내 존재에는 무관심해 보였다. 40분의 제한 시간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 온순한 거인의 진주 같은 반점 무늬가 깊고 푸른 심해 속으로 천천히 사라졌다.
그다음 날에는 세인트헬레나 총독의 공식 관저인 플랜테이션 하우스(Plantation House) 부지에서 세계 최장수 육지 동물을 알현했다. 이름부터 식민지 시대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이곳에서 마주한 것은 세이셸 자이언트 거북 조나단(Jonathan)이었다. 1882년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영국인들이 이곳으로 옮긴 후 조나단은 줄곧 이 섬을 고향 삼아 살아왔다. 현재 추정 나이 193세. 무려 40명의 미국 대통령과 8명의 영국 군주가 통치하던 시기를 거치며, 조나단은 섬의 동전과 우표에도 새겨진 불멸의 존재가 되었다. 잘 손질된 잔디밭 위를 느릿하게 걷던 그의 발걸음은 먹이를 보자 갑작스럽게 생명력이 폭발하는 듯 민첩해졌다. 한때 옆 코트에서 테니스 경기를 방해하기로 유명했던 장난기 어린 면모가 엿보이는 순간이었다. 오늘날 조나단은 오랜 동반자 프레데릭(Frederik)을 비롯해 세 마리의 거북 친구들과 한 울타리를 공유하며, 세인트헬레나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세상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동물부터 가장 희귀하고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세인트헬레나의 바다와 육지, 하늘 전체가 생명으로 맥동한다. 록 마운트 워킹 투어(Rock Mount Walking Tours)의 톰 워틀리(Tom Wortley)와 함께 블루 포인트(Blue Point)를 향해 걷던 어느 날, 나는 그 사실을 피부로 체감했다. 진정한 ‘세인트’ 스타일에 걸맞게 워틀리는 숙련된 석고 미장공이었다. 무너져가는 절벽에 간신히 뿌리 내린 마지막 야생 흑단나무 다섯 그루와 그 옆에 자생하던 토종 관목을 거치며 지나갔다. 섬 남단에 난 이 오솔길은 ‘혼돈의 문(Gates of Chaos)’, 로어 블랙 록스(Lower Black Rocks), 대서양이 채워주는 조수 웅덩이인 ‘롯의 아내의 연못(Lot’s Wife Ponds)’ 등 극적인 해안 지형을 조망할 수 있는 명소였다. 가면부비새, 붉은부리열대새, 쇠제비갈매기들이 험준한 바위 턱에 둥지를 틀고, 그 위로 요청처럼 가녀린 흰제비갈매기들이 빙빙 원을 그리며 날아들었다.
하지만 이 섬의 생물 다양성을 제대로 보여주는 존재는 따로 있다. 바로 420종에 달하는 토착 육상 무척추동물이다. 이들은 작아서 쉽사리 눈에 띄지 않는다. 멸종 위기종의 은신처를 자처하는 세인트헬레나에서 최근 질병으로 개체 수가 급감한 유럽 꿀벌, 피할 데 없는 자외선 아래 형광빛을 발산하는 손톱만 한 크기의 노란 쥐며느리, 황금빛 골든 실크 스파이더가 섬의 생명력을 과시하며 살아간다. “이들 종의 활동 능력을 지표 삼아 세인트헬레나 봉우리를 뒤덮은 운무림(구름이나 안개가 자주 끼는 장소에 발달하며 높은 습도 때문에 선태류나 유관속식물이 두껍게 착생한 숲)의 상태도 세심하게 모니터링하고 있습니다.” 세인트헬레나 내셔널 트러스트의 디렉터 헬레나 베넷(Helena Bennett)이 말했다. “이들을 위협하는 침입종을 통제하는 것도 우리의 중요한 역할이죠.”
그러나 세인트헬레나가 간직해온 생물 다양성은 인간의 발길이 닿은 순간부터 위협받기 시작했다. 1502년 포르투갈인의 습격을 시작으로 짧은 네덜란드 통치기를 거쳐 17세기 영국 동인도 회사가 섬을 장악했고, 현재까지 영국령으로 남아 있다. 식민지 개척자들은 섬의 천연자원을 무서운 속도로 수탈했고, 야생 쥐와 토끼, 고양이, 방목 가축은 섬의 취약한 생태계를 무자비하게 파괴했다. 장작과 무두질용 나무껍질을 얻기 위해 벌목이 계속되자 흙을 붙잡고 있던 나무가 사라져 비옥한 토양이 가파른 경사면에서 미끄러져 내렸고, 바다는 검게 변했다. 푸르던 풍경은 불과 수십 년 만에 메마른 관목 지대로 변해버렸다. 이곳의 강우량은 적지만, 많은 토착 식물이 공기 중 수분을 흡수하도록 진화했는데 오늘날 이렇게 모인 담수가 섬 전체 물 공급량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다. 이런 환경은 중간 항로가 필요했던 악명 높은 선박들이 세인트헬레나를 필수 기항지로 삼은 이유였다.
식민주의가 환경에 가한 파괴는 인간에게 남은 역사적 상흔과도 닮아 있다. 세인트헬레나는 인류 역사의 가장 어두운 챕터 중 하나인 대서양 노예무역의 중심지였다. 1833년 노예제 폐지법이 제정된 후 영국 해군은 불법 노예선을 나포해 이 섬으로 우회하는 전략을 썼다. 그 결과 1840년부터 1872년 사이, 무려 2만5,000명이 넘는 아프리카 노예들이 이곳 해안에 내려졌다. 공식적으로는 ‘해방’된 것이지만, 다수는 ‘계약 노동’이라는 이름 아래 영국령 서인도 제도로 다시 이송되었다. 섬에 남은 이들 중 3분의 1은 도착 직후 목숨을 잃었다. 살아남은 자들 역시 열악한 주거 환경, 식량 부족, 강제 노동을 견뎌내야 했다.
2008년 섬에 공항을 짓기 위한 도로 공사 도중 325명의 유해가 발굴되었다. 4년 후, 나미비아 태생의 환경 담당관 아니나 반 닐(Annina Van Neel)이 프로젝트 팀의 일원으로 세인트헬레나에 도착했고,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제임스타운 인근 루퍼츠 밸리(Rupert’s Valley)에서 더 방대한 매장지가 발견되었다. 5,000명의 유해가 발굴된 이곳은 오늘날까지도 지구상에서 가장 중요한 노예무역의 역사적 유산으로 평가받는다. 직책을 사임한 반 닐은 세인트헬레나 내셔널 트러스트로 자리를 옮긴 후 예를 갖춰 유해를 다시 안장하고 섬의 아프리카 유산을 기리기 위한 계획에 착수했다. 저명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보존 전문가 페기 킹 조드(Peggy King Jorde)를 비롯해 노예의 후손으로 구성된 세인트헬레나 해방 아프리카인 자문 위원회(Liberated African Advisory) 위원들과 함께한 반 닐의 여정은 2022년 다큐멘터리 영화 <어 스토리 오브 본즈>의 주요 서사를 이루었다.
세인트헬레나는 대서양을 건너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 하는 아프리카계 후손에게 귀환과 성찰의 터전이 되고 있다. 베넷은 내셔널 트러스트의 대서양 횡단 노예 추모 프로젝트(Transatlantic Slave Memorial Project)의 일환으로, 1865년 해방 아프리카인 시설의 일부로 지어진 ‘넘버원 빌딩(No. 1 Building)’을 주요 센터로 탈바꿈할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주민들은 물론 노예무역 역사와 관련된 광범위한 후손 공동체 모두가 이 중요한 문화 자원을 자유롭게 탈식민화된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반 닐이 이어 설명했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의 배상, 복원, 추모 활동이 진정한 치유와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집단적 트라우마와 승리를 기억하는 여정으로 해석될 테니까요. 모든 활동은 개인과 공동체의 상처를 결코 되풀이하지 않으며, 모든 구성원을 담론으로 초대하는 한편, 포용성과 형평성을 바탕으로 모든 과정이 파괴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세인트헬레나에서 사람과 자연의 치유는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오랫동안 소외되고 권리를 박탈당해온 ‘세인트’ 주민들에게 남대서양의 이 외딴섬은 이제 기억의 장소를 넘어 가능성의 땅으로 다시 그려진다. 그 변화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은 바로 내가 여정 막바지에 방문한 밀레니엄 포레스트(Millennium Forest)일 것이다. 2000년에 시작된 이 숲 조성 프로젝트는 거의 모든 세인트 주민이 고무나무, 난쟁이 흑단나무, 회양목 같은 토착 수종을 한 그루씩 구입해 그레이트 우드(Great Wood) 숲이 있던 자리에 심으면서 시작됐다. 덕분에 한때 황량하기 그지없던 반사막 지대는 이제 서서히 초록빛으로 물들고 있다. 정원 센터는 농부와 아마추어 가드너에게 부지런히 채소 모종과 과실나무, 꽃 식물을 공급한다. 그 결과 어느새 어린나무 사이에서는 이곳에서만 서식하는 마지막 남은 척추동물인 세인트헬레나 물떼새가 덤불 속에서 먹이를 찾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지난 20년간 새의 개체 수는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지금 세인트헬레나에서 펼쳐지는 변화는 단순한 복원의 개념을 넘어선다. 그것은 생태 지도와 섬의 정체성을 다시 쓰는, 탈식민화의 생생한 현장이다. 요하네스버그에서 이 섬에 바로 닿을 수 있는 직항 노선이 열렸지만, 세인트헬레나에 닿는 길은 여전히 멀고 험난한 여정임을 고백한다. 그러나 그 길 끝에서 마주하는 것은 되찾은 역사와 실시간으로 새롭게 쓰고 있는 지속 가능한 미래다. V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