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Декабрь
2025

‘보그’ 막내 에디터들이 연말에 파마를 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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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저물어가는 12월, <보그> 사무실에 파마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막내 에디터들이 동시에 파마를 하고 나타난 탓이죠. 그들의 선택은 히피펌과 젤리펌. 비슷한 듯 보이지만 컬의 굵기와 강도에서 확실한 차이를 보이는 스타일인데요. 뷰티 에디터 신서영, 웹 에디터 하솔휘, 피처 어시스턴트 부승혁이 파마를 결심한 이유는 뭘까요? 겨울에 파마가 끌리는 이유, <보그> 에디터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죽어가는 볼륨을 살릴 유일한 구원책

몇 주 전 생일,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고르려고 앨범 앱을 열었다. 100장이 넘는 사진 중 결국 모자를 푹 눌러쓴 사진을 고른 건 다름 아닌 머리 때문이었다. 축 가라앉은 두피 볼륨과 별다른 관리 없이 가슴 밑까지 길게 내려온 생머리가 너무 거슬렸다. 레이어드 커트 덕분에 컬 없이도 경쾌한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고 여겼는데, 사진 속 내 머리는 얼굴의 단점을 더 부각하고 숱도 훨씬 적어 보였다. 적잖은 충격에 휩싸여 바로 미용실을 찾았다.

나는 1년에 한 번 주기적으로 파마를 하는 편이다. 생머리보다 관리하기 훨씬 쉽기 때문이다. 머리카락을 배배 꼬아 말리면 스타일링 기기로 공들인 듯하고, 바쁠 땐 그냥 툭툭 털어 자연 건조하면 오히려 더 풍성한 컬이 완성되니 유독 머리 손질을 어려워하는 나에겐 최고의 선택이다. ‘아무것도 안 했지만 뭔가 한 것 같은’ 매력에 6년 동안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고 했던가. 어느 순간 청순한 생머리에 다시 끌려 1년 넘게 파마를 쉬던 참이었지만 다시 그 마법 같은 힘을 빌리기로 결심했다.

미용실에 가서 디자이너에게 평소와 다른 요청을 했다. 매번 “굵게, 자연스럽게 말아주세요” 식이었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정수리부터 꽉 채워서 티 나게 말아주세요!”라고 말했다. 사실 느슨한 히피펌을 해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히피펌’이라는 단어가 주는 강렬함에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내 설명을 잠자코 듣던 담당 디자이너가 보여준 시안 밑엔 ‘젤리펌’이라고 적혀 있었고, 내가 원하던 이미지에 완벽하게 부합했다. 파마한 티는 확실히 나지만, 히피펌보다는 자연스럽고 포근한 스타일. 겨울이라 따뜻해 보이는 풍성한 컬이 더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어서 생명력이 다해가는 긴 머리에 활력을 불어넣고 싶었다.

결과는 대만족. 내 입으로 말하기 조금 창피하지만, 어린 시절 동경했던 순정 만화 주인공 같은 머리다. 덜 말릴수록 컬이 살아나는 특징 덕분에 외출 준비 시간이 10분이나 단축됐다. 스타일은 신경 쓰지 않은 듯 무심하지만, 완성도는 높아 보인다. 냉정한 후면 카메라 앞에서도 머리카락이 살아 숨 쉰다. 당분간 파마의 매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듯하다. 신서영 뷰티 에디터

커트만큼 확실한 변화를 찾아서

졸업, 퇴사, 이별 같은 관문이 쾅 닫고 나와버리는 문이 아니라 덜렁 달고 살아야 하는 관절인 걸 알고 난 뒤에도 연말마다 매듭짓기 강박은 끊이질 않는다. 12월을 앞두고 관절염 앓듯 눈에 보이는 변화를 찾았다. 옷 쇼핑이나 눈썹 정리보다 확실한 한 방이 필요했다. 커트가 가장 쉽고 빠를 테지만, 오랜만에 9번 척추까지 기른 머리가 아까웠다.

그래서 파마를 결심했다. 하지만 아침마다 드라이가 필요한 세팅펌을 하고 싶진 않았다. 막 말려도 괜찮은 파마를 궁리하다 5년 전에 했던 전기 맞은 듯 복슬복슬한 머리가 떠올랐다. 당시에 디자인은 마음에 들었지만, 정수리 부분은 금방 풀리는 등 디테일이 아쉬웠기에 그 디자이너를 다시 찾아가진 않을 작정이었다. 레퍼런스 사진을 찾기 위해 포일펌을 검색했더니 양희은을 비롯한 짧은 머리만 나왔다. 긴 머리는 포일펌을 안 하는구나 싶어 히피펌을 검색했다. 하지만 사진마다 컬이 제각각이었다. 그래서 두 달 전 슬릭펌을 해준 디자이너의 인스타그램을 정주행했다. “숱도 많이 치고, 층도 많이 내는데, 날려 보이지 않게, 무겁게 내려주세요!” 복잡한 요청을 그대로 해주는 분이기에 새로운 히피펌 고수를 찾기보다 이분에게 내가 원하는 느낌을 설명하자 싶었다.

디자이너의 인스타그램에서 캡처한 사진 2장을 가져갔다. 하나는 앞머리 커트, 하나는 펌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디자이너는 오랜만에 자글자글한 파마 한다며 즐거워했다. “두피가 땅길 수 있어요. 최대한 정수리 가까이 당겨서 말 거예요. 이런 파마는 애매하게 시작하면 이도 저도 아니거든요.” 2개월 전 슬릭펌을 해서 컬이 잘 안 나올 수도 있느냐는 질문엔 있는 그대로 말해줬다. “워낙 강한 컬이라 펌이 안 나오진 않을 거예요. 하지만 머릿결은 아무래도 많이 상하겠죠? 그래서 지금 건조한 끝부분 1cm는 자르고 시작할게요.”

디자이너는 어시스턴트에게 맡기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로드를 말아줬다. 그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로드 크기도 제각각이고, 머리숱 잡는 정도도 제각각이어서 남에게 맡길 수 없겠다 싶었다. 귀 주변은 10가닥 정도로 아주 적게 잡기도 했다. 색색깔의 로드가 늘수록 만족스러웠다. 결과는? 5년 전 그 머리보다 확실히 꼼꼼하게 잘된 머리였다.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낯설어서 헛웃음이 났다. 디자이너도 적응하는 데 며칠 걸릴 거라며 내일 저녁 머리 감을 때까지만 견디라고 했다. 원래 머리하는 날에는 최고의 세팅 상태를 즐기기 위해 누구라도 만나지만, 도저히 만날 수가 없었다. 집에서 거울을 들여다보고 적응해야 했기 때문에 택시를 타고 곧장 집으로 갔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거울을 보며 낯을 익혔다. 아, 그래도 변화는 확실하구나.

거울 볼 때마다 괜히 웃음이 난다. 낯이 익으니 꽤 마음에 든다. 캐주얼한 스타일을 즐겨 입기에 파마가 따로 놀아 보인다거나 하진 않았다. 포멀한 룩을 입어야 할 때도 깔끔하게 모아 묶으면 그만이다. 가장 만족스러운 순간은 머리 묶을 때다. 하이 포니테일을 즐겨 하는데, 머리를 꽉 죄어 묶어도 정수리 주변에 자연스러운 볼륨이 있다. 귀찮음 많은 내 성미를 알기 때문에 헤어 제품은 새로 사지 않았다. 일주일 차, 샴푸 전에 머리를 빗고, 트리트먼트를 듬뿍 발라주고, 두피만 바싹 말리는 걸로 충분하다. 하솔휘 웹 에디터

추운 만큼 뽀글뽀글하게

파마를 하고 출근한 월요일, <보그> 피처 팀 어시스턴트이자 동갑 친구인 승혁도 머리가 복슬복슬해져 있었다. 우선 서로를 성심껏 비웃어줬다. 그래도 우리 사이가 건재하다는 확인이자 과시다. 비웃음 끝에 승혁이 말했다. “그래도 로맨틱 코미디 주인공 같아. 한 2005년쯤?” 칭찬인지 욕인지 헷갈렸지만, 정중히 인터뷰를 요청했다. 남자 펌은 내게 미지의 영역이다. 무엇보다 승혁은 뻣뻣하고 굵은 직모를 타고났다. 이 역시 반곱슬로 태어난 내가 모르는 세계다.

승혁은 파마를 6주 간격으로 두 번 했다. “머리가 너무 빨리 풀렸어. 근데 파마 자체는 마음에 들어서 한 번 더 했지.” 시술 문제라기보다는 자신의 직모가 워낙 억세서 금방 풀렸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헤어 숍은 1년 전 효창공원 근처로 이사한 뒤 동네에서 찾은 곳이다. “동네 산책을 하는데, 인테리어가 미니멀하고 예쁜 곳이 있는 거야. 카페인 줄 알았는데 헤어 숍이더라고. 인스타그램에서 포트폴리오를 보니 남자 머리만 전문으로 하시길래 가봤지.” 헤어 숍 인테리어가 디자이너의 미감을 반영한다는 데 고개를 끄덕였다.

승혁은 히피펌 바로 전 단계, ‘빈티지펌’을 요청했다. ‘빈티지펌’이라고 했을 때 머리에서 바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어 추가로 설명을 요청했다. “히피펌이 10이면 내가 원한 건 7 정도? 처음엔 디자이너가 머리 길이가 충분히 길지 않아서 어렵다고 하셨지.” 헤어 숍에서는 숫자로 말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설명하는 방법도 괜찮겠다고 덧붙였다. “그래도 두 번째엔 내 머리카락은 펌이 잘 풀린다는 걸 알고, 더 작은 로드로 말아주셨어. 결과는 6 정도? 디자이너는 곱슬하게 나왔다고 놀라셨지만, 난 생각했던 분위기에 가깝게 나온 거 같아.” 나는 승혁의 컬이 유달리 곱슬하다고 여기지 않았으나, 승혁과 인스타그램에서 남성 펌을 찾아보니 가르마를 자연스럽게 넘길 정도의 희미한 컬이 주류다.

승혁은 겨울 기분을 내고 싶어서 파마를 결심했다. “복슬복슬하고 부숭부숭한 느낌이 좋잖아. 따뜻해 보여. 물리적으로 견딜 수 없는 기온까지 떨어지니까, 기분이라도 내는 거지.” 파마 이후 옷 스타일을 바꾸지 않아도 새 옷을 장만한 기분이라고 한다. “늘 입던 더플 코트를 입어도 느낌이 달라.”

손질 루틴도 꽤 디테일했다. “물기 있는 상태에서 오일 바르고, 찬 바람으로 말리고, 컬 크림 바르고, 마지막에 스프레이.” 그리고 중요한 건 절대 ‘바싹’ 말리지 않는 것. “수분이 있어야 컬이 살아 있어.” 나보다 많은 루틴에 놀랄 때쯤, 헤어 숍에 관한 제 나름의 철학도 덧붙였다. “한 곳만 가지 말고 계속 탐색해야 하는 거 같아. 메인을 하나 두되, 다른 곳도 가보는 거지. 다니던 곳만 가다 보면 어느 순간 매너리즘 오더라고. 그럼 또 다른 데 가서 기분 전환 하고 오는 거지.”

연말연시는 늘 기묘한 추진력을 선물한다. 따뜻해지고 싶어서든, 속 시원해지고 싶어서든 우리는 파마를 했고 그 덕에 다 같이 점심을 먹었다. 하솔휘 웹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