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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테가 베네타, 루이스 트로터가 창조한 가장 우아한 장인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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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한 이탤리언 장인 정신을 대하는 차분하고 우아한 접근법,

매듭을 모티브로 엮음의 미학을 전개하는 한국 작가 이광호의 ‘옵세션(Obsession)’ 시리즈와 밀라노 기반의 디자인 스튜디오 6:AM이 무라노 장인들과 협업한 색색의 유리 스툴이 보석처럼 빛나는 쇼장 전경
성공적인 데뷔 쇼를 선보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루이스 트로터의 수줍은 인사.

“사탕 상자 안에 있는 기분입니다.” 루이스 트로터(Louise Trotter)가 백스테이지에서 기자들에게 말했다. 지난해 12월 보테가 베네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된 그녀는 한 해 동안 패션계를 들었다 놨다 한 디자이너 인사이동 속 유일한 여성이었다. 그리고 지난 9월 뉴욕에서 레이첼 스콧(Rachel Scott)이 프로엔자 스쿨러 수장으로 임명되면서 그 숫자가 둘로 늘었다. ‘베니스의 화려함, 뉴욕의 에너지, 밀라노의 본질주의’. 트로터가 컬렉션 노트에 남긴 구절은 보테가 베네타의 첫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로라 브라지온(Laura Braggion)에게서 착안했다. “그동안 내가 해온 작업과 나라는 사람 덕분에 성공했다고 믿고 싶습니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 말고요.” 트로터는 최근 <보그> 인터뷰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2026 봄/여름 시즌 그녀의 데뷔 쇼는 여전히 뭔가를 입증하는 자리라는 기분이 들었다. 트로터는 뉴욕과 런던, 파리를 오가며 오랫동안 커리어를 쌓았고, 최근까지 라코스테와 까르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했으며, 재임 기간은 다른 남성 동료보다 훨씬 길었다.

컬렉션은 그녀가 새로운 상황을 마음껏 즐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하지만 그녀의 표현처럼 달콤한 사탕 상자를 손에 넣은 아이보다는, 자신이 가진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정확히 아는 어른에 가까웠다. “보테가가 하나의 공방이라는 점이 마음이 듭니다. 이탈리아에서 오랜 역사를 지닌 다채로운 공방은 장인 정신은 물론 이를 만들어내는 사람과 착용자의 집단적인 노력이 깃들어 있는 장소입니다. 손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곳이죠.” 트로터는 보테가 베네타만의 독보적인 강점인 정교한 장인 정신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풀어내 이를 무기로 삼았다. 뱀 비늘처럼 보이는 인트레치아토 테일러드 코트를 직조했고, 극도로 가는 가죽 줄을 엮어 바닥에 끌리는 길이의 드라마틱한 인트레치아토 케이프를 만들었으며, 데님 인트레치아토 로브 코트에는 깃털을 더해 런웨이를 떠다니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번 컬렉션을 정의하는 특징은 움직임이다. 가죽 밴드를 가로로 이어 붙여 완성한 치마의 늘어진 밑단이나 폭 좁은 마이크로 플리츠 드레스 옆 선을 따라 흐르는 프린지 장식처럼 말이다. 가장 놀라운 것은 주황, 빨강, 은빛 파랑의 밝은 색조로 구성된 스웨터. 눈부시게 반짝이며 모델의 걸음에 맞춰 경쾌하게 흔들리던 바로 그 의상이다. 재활용 유리섬유를 사용했다. “모피 같은 느낌을 주면서도 유리처럼 움직이죠.” 트로터가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어깨선을 따라가도록 재단했습니다.” 동일한 소재로 만든 치마는 소용돌이치는 그러데이션 색감을 적용했다.

과장된 어깨, 풍성한 볼륨, 신발의 발목 스트랩에 끼워 넣고도 남을 정도로 긴 바짓단. 트로터의 테일러링은 대체로 웅장하고 압도적이었다. 한두 사이즈 정도 작으면 더 보기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대조적으로, 스트랩이 어깨에서 흘러내린 파라슈트 실크 드레스는 매혹적인 가벼움을 지니고 있었다. 옷이 신체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는 엉덩이 부분을 강조하는 내부 구조 덕분이었다.

트로터는 액세서리 디자인을 시작할 때 영화 <아메리칸 지골로>에 등장한 로렌 허튼의 가방을 참고했다고 밝혔다. 보테가 베네타를 전 세계에 알린 그 클러치다. 패션쇼에 참석한 로렌 허튼은 상징적인 차림으로 영화 속 로렌(Lauren) 클러치의 확장된 버전을 든 채 프런트 로에 앉았다. 한층 유연한 구조를 갖춘 놋(Knot), 컷아웃을 통해 클러치로 변형된 까바(Cabat) 등 하우스의 클래식 디자인 모두 현대적으로 재탄생했다. 전반적으로 좋은 시작이었다. V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