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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단 앤더슨은 디올의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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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세계.

무슈 디올 이후 이 브랜드의 모든 컬렉션을 맡은 이는 조나단 앤더슨이 유일하다. 그는 과연 ‘디올’이라는 왕관의 무게를 견딜 수 있을까? 조나단 앤더슨이라면 기꺼이 해낼 거라고 확신한다.

“디올의 집에 들어갈 용기가 있나요?” 이 문장은 조나단 앤더슨(Jonathan Anderson)이 영국 출신의 다큐멘터리 감독 아담 커티스(Adam Curtis)에게 제작 의뢰한 영상에 나오는 첫 대사다. 41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프랑스의 국보급 패션 하우스에서 첫 여성복 컬렉션으로 넘어야 할 관문이 얼마나 중대하고도 두려운 일인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렇다. 앤더슨은 용기를 냈다. 그의 디올 합류는 이번 시즌 패션계를 뒤흔든 가장 중요한 인사 두 가지 중 하나였고, 앞서 발표한 첫 남성복 쇼로 이미 큰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상상을 뛰어넘는 마케팅 감각의 소유자인 그는 쇼가 열리는 공간 한가운데에 자신의 두려움을 드러내는 것으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데뷔 쇼를 시작했다. 커티스의 영상은 거대한 역피라미드 형태의 스크린 위에 펼쳐졌는데, 짧게 편집한 공포 영화 클립과 앤더슨 이전에 하우스를 이끈 이브 생 로랑, 마르크 보앙, 지안프랑코 페레, 존 갈리아노, 라프 시몬스, 크리스 반 아쉐, 킴 존스와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의 영상을 빠른 속도로 감아 교차 삽입한 것이었다. 당연히 크리스챤 디올도 있었고 뒤이어 히치콕 감독의 1950년 흑백영화 <무대 공포증> 속 마를렌 디트리히가 등장했다(커티스는 천재적으로 레퍼런스를 병치해 의미를 만들어냈다).

앤더슨도 무대 공포증에 시달렸을까? 쇼 전에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커티스에게 영상 제작의 모든 것을 일임했다고 말했다. “저는 얼마나 많은 디자이너가 하우스를 거쳐 갔는지 보여주고 싶었지만, 커티스는 브랜드를 책임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신경증을 표현했죠.” 그는 동의 했다. “물론 큰 도전이에요! 하지만 마지막에 앞으로 되감은 영상은 바닥에 놓인 디올 슈박스 안으로 떨어집니다. 누구나 집에 하나쯤 갖고 있는, 옛날 사진과 추억을 보관하는 오래된 신발 상자라고 여겼어요. 열어서 꺼내 볼 수도 있고, 닫아두고 보지 않을 수도 있죠. 다들 그렇듯이요.” 사실 앤더슨은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즐기는
쪽이다. 과거의 어떤 면을 발견하고 부각하는 것은 그가 로에베를 무덤덤한 가죽 회사에서 살아 숨 쉬는 문화적이고 예술적인 패션 브랜드로 변화시키기 위해 사용한 방식이며,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패션사에서 중요한 디올의 요소를 전혀 무관해 보이는 장르와 결합하는 재능은 앞서 남성복 쇼에서 드러난 적 있다. 18세기풍 프록 코트와 화이트진, 샴브레이 셔츠와 리본 타이가 그 예다. 이 모든 것은 오늘날 패션 미학에 변화를 가져오기에 충분하다.

여성복 데뷔 쇼의 접근 방법은 약간 다르면서도 여전히 동일했다. 그의 오프닝 룩은 화이트 저지로 휘감고 두 개의 리본으로 마무리한 종 모양의 화이트 크리놀린 드레스였다. 몇 가지 룩이 소개된 다음 허리 뒤쪽으로 비행기 날개 모양 페플럼이 달린 블랙 턱시도에 데님 미니스커트를 매치하고, 디올의 모자 디자이너 스티븐 존스가 디자인한 컨셉추얼한 트리콘 모자로 완성한 룩이 등장했다. 그러고 나서 메종의 상징인 바 재킷이 반짝이는 초록색 아일랜드 도니골(Donegal) 트위드 소재로 모습을 드러냈는데, <이상한 나 라의 앨리스>에서 조그맣게 줄어든 것처럼 앙증맞은 사이즈로 짧은 플리츠 스커트에 매치되었다.

무슈 디올이 세운 전통은 모든 디자이너에게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창의적인 면에서 족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앤더슨은 디올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존 갈리아노가 비공식적으로 만나준 것에 대해 고마워했다. 그는 갈리아노가 해준 조언을 이렇게 전했다. “브랜드를 사랑할수록 더 많은 것을 돌려받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아름다운 비유라고 생각했어요.” 조언에 담긴 의미는 과거와 맞서 싸우려 하지 말고 함께 가라는 것이다. 앤더슨은 자신의 임무가 “수십 년 동안 쌓인 아이디어의 경계를 흐리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디올을 향한 ‘지나친 경외심’의 짐을 덜어내는 것이다.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는 디올을 코르셋에서 해방시켰고, 앤더슨은 이를 되돌리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키우리보다 한층 가볍고 섬세한 레이스 드레스를 제시했다. 그중 하나는 한 줌밖에 되지 않을 것 같은 블랙 샹티이 레이스 란제리 드레스로, 걸을 때마다 뒤쪽이 나비 날개처럼 펼쳐졌다.

무슈 디올이 1952년 선보인 시갈(La Cigale, 매미라는 뜻) 드레스의 입체적이고 딱딱한 실루엣을 가장 가벼운 방식으로 재현한 것이다. 앤더슨은 오랫동안 그 실루엣에 매료되었다. 이 드레스는 디올이 상징하는 고전적인 ‘프린세스 판타지’에 대한 그의 생각을 구현한 것으로, 이런 면은 시폰 소재 버블 드레스와 스커트를 장식한 귀여운 은방울꽃 프린트나 자수에도 드러났다. 그러나 앤더슨은 가장 괴상하고 예상치 못한 걸 선보일 때 가장 혁신적이다. 얼굴의 반을 가리면서 레드 새틴 플리츠 톱 뒤로 폭포수처럼 흘러내린 레이스처럼 말이다. 트리콘 모자와 볼륨 있는 카고 팬츠를 입은 모델은 디올 하우스의 패션 괴도처럼 보였다.

앤더슨은 이번 쇼 전반에 대해 “잘 차려입는 것과 캐주얼하게 입는 것 사이의 긴장감을 들여다봤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폴로 셔츠와 데님 팬츠를 런웨이에 올렸다. 기존 디올 고객이 이를 패션으로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지만,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케이프라면 보수적인 고객과 아방가르드한 고객 모두 공감할 것이다. 특별한 자리든, 길거리를 걸을 때든 말이다. 앤더슨은 이번 컬렉션을 완성하기까지 두 달밖에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역사광인 그는 “모든 것에 시간이 필
요하다”는 것을 잘 안다고 말했다. 자신의 스타일을 구축하려면 디올 아틀리에와의 협업은 매우 중요한 과제다. 이미 그는
레이디 디올 백을 부드러운 스웨이드 소재의 볼링백 형태로 재해석했고, 로저 비비에의 루이 힐 펌프스를 되살렸다. 발등
쪽에 토끼 귀가 비죽 솟은 펌프스도 있었다. 누군가는 매력적이고 귀엽게 여길 것이고, 누군가는 기이하고 환상적으로 받
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상업적인 아이템이 있다. 앤더슨은 로에베에서 이 능력을 입증했다. 쇼 마지막에 그에게
기립박수를 보낸 이들은 그가 동일한 방식으로 디올의 매력에 혁명을 일으킬 거라고 확신했다. V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