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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오 비탈레의 베르사체, ‘섹시함’이 각성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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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능에 대한 새로운 정의. 그 안에는 현실과 시대정신이 있다.

이번 시즌 데뷔 쇼를 치른 디자이너 중 가장 어려운 과제를 맡은 사람은 누구일까? 아마 다리오 비탈레(Dario Vitale)가 아닐까? 비탈레는 베르사체 역사상 최초의 ‘베르사체 가문 출신이 아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세상을 떠난 지아니 베르사체보다 더 오랫동안 회사를 이끈 도나텔라 베르사체는 여전히 ‘최고 브랜드 앰배서더(Chief Brand Ambassador)’로 남아 있고, 하우스는 현재 미우미우의 모회사 프라다 그룹에 인수되는 중이다. 그리고 비탈레는 얼마 전까지 미우미우에서 레디 투 웨어 디자인 디렉터로 일했다.

자기 확신이 없는 디자이너라면 이 모든 상황에 위축될 수 있겠지만, 42세의 비탈레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의 첫 컬렉션은 대담했고, 베르사체의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재정립하려는 시도는 거침이 없었다. 비유하면, ‘신들의 세계’에 머물던 브랜드를 일상의 영역으로 끌어내린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신화는 신들이 자기들끼리 사랑에 빠지는 데 지루함을 느끼고 인간 세상으로 내려오면서 시작된 거예요. 그러니까, 바닥에 끌리는 이브닝 드레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죠.” (실제로 이번 컬렉션에는 이브닝 드레스가 단 한 벌도 등장하지 않았다.) 그는 또 이렇게 덧붙였다. “좀 더 현실적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제 주변에는 자수 장식 가죽 베스트를 입고 싶어 하는 친구가 아주 많아요. 멧 갈라에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디스코 클럽에 가기 위해서죠.”

그의 아이디어는 지아니 베르사체의 1980년대 후반 디자인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비탈레의 어머니는 그 시절 베르사체 옷을 열정적으로 수집했다. 하지만 이번 컬렉션을 보면서 ‘엄마 옷장’을 떠올린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물론 그 시대를 훌륭하게 반영한 펌프스와 클래식한 핸드백 정도를 제외하면 말이다.) 다양한 연령대의 모델이 등장했지만 디자인은 명백히 비탈레와 같은 밀레니얼 세대를 향하고 있었다. 그들의 빈티지와 레이어링에 대한 애정을 그대로 반영하면서 젊거나 혹은 나이가 있어도 탄탄한 체형을 가진 이들 또한 겨냥했다.

비탈레의 베르사체는 여전히 섹시했지만, 과거의 베르사체와는 다른 의미의 섹시함이었다. 좀 더 흐트러져 있었다. 앞에서 보면 프랑스 디자이너 마담 그레(Madame Grès)가 연상되는 우아하고 구조적인 저지 드레스는 뒷면이 브리프 위에 간신히 걸쳐져 있을 정도로 아슬아슬했다. 마이애미 해변의 머슬 티셔츠처럼 옆면이 깊이 파인 슬리브리스 톱의 끝단을 일부러 올이 풀린 채로 두었고, 하이 웨이스트 진의 벨트도 버클이 채워져 있지 않았다.

어떤 룩은 지퍼까지 열려 있었다. 그리고 체인 메일 브라 톱에 매치한 스커트 위에 단정하고 작은 캐시미어 카디건을 두른 룩이 베르사체 런웨이에 등장한 것도 처음이었다. 이번 밀라노 패션 위크에서는 유난히 색이 돋보였고, 비탈레는 리넨 수트에서 최고의 컬러 믹스를 보여줬다. 보라색과 오렌지 레드, 켈리 그린과 하늘색 조합은 신선했다. 또한 베르사체의 상징적인 프린트를 재해석한 방식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비탈레는 ‘베르사체 고객의 옷장’을 상상했다고 설명했다. “그 옷장을 들여다봤을 때 무늬가 다른 셔츠가 걸려 있는 것처럼 보여주고 싶었어요. 모두 다르지만, 그 다름이 조화를 이루는 거죠. 저는 그걸 ‘거대한 프린트의 풍경(The Great States of Print)’이라고 부릅니다.” 쇼는 밀라노 중심의 피나코테카 암브로시아나(Pinacoteca Ambrosiana)에서 열렸는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패션쇼 장소로 사용된 적 없는 미술관이다. 가장 방대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드로잉과 노트 컬렉션, 그리고 카라바조(Caravaggio)의 작품을 소장한 숨은 보석 같은 곳. 비탈레는 자신이 ‘카라바조에 대해 고통스러울 정도의 열정’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뿐 아니라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 감독의 1968년 작 <테오레마(Teorema)>에도 강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 영화는 미스터리한 남자가 부르주아 가정에 나타나 그 가족의 삶을 완전히 뒤흔들어놓는 이야기다. 그리고 비탈레는 이번 쇼 공간을 ‘집처럼’ 연출했다. 심지어 자신의 침대 시트를 가져와 전시실 구석에 놓인 매트리스 위에 직접 깔아놓기까지 했다. 새롭게 태어난 베르사체에서 비탈레의 역할이 그 영화 속에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테오레마> 속 그 남자, 즉 ‘방문자(The Visitor)’ 같다고 말했다. “이건 일종의 각성이에요.” V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