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래된 주얼리 하우스, 쇼메의 모든 시간
역사적인 동시에 현대적인, 주얼리 메종 쇼메의 위대한 유산.
2024 파리 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예상보다 훨씬 뛰어난 성적을 거둔 한국은 연일 축제 분위기였고, 올림픽 참가 선수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여전히 뜨겁다. 문득 파리 올림픽 메달이 궁금해졌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규정에 따라 앞면에는 날개를 편 승리의 여신 니케(Nike)가 파나티나이코 경기장을 날아오르고, 배경 왼쪽에는 아크로폴리스가, 오른쪽에는 파리의 아이콘 에펠탑이 새겨져 있다. 독특한 건 메달 뒷면이다. 에펠탑 개보수 작업에서 나온 철 조각 약 91kg을 제공받아 만든 육각형 철 조각을 하나씩 품고 있기 때문이다. 패럴림픽까지 포함해 총 5,084개에 달하는 메달은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하이엔드 주얼리 브랜드에서 디자인을 맡아 주목받기도 했다. 늘 프랑스 역사의 중요한 순간을 함께해온 쇼메다.
1780년 작은 보석상으로 시작한 쇼메가 황실 주얼러로 불리게 된 영화 같은 일화는 유명하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세공사 앙쥐 조세프 오베르(Ange-Joseph Aubert)의 첫 번째 견습생이었던 창립자 마리 에티엔느 니토(Marie-Étienne Nitot)가 한 남자의 목숨을 구해준 일이다. 그의 이름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éon Bonaparte), 훗날 프랑스에서 샤를마뉴 대제 이후 유일하게 황제 자리에 오른 프랑스 제1제국의 나폴레옹 1세다. 1804년 파리 노트르담 성당에서 열린 대관식에 쓰인 왕관과 보검, 각종 장신구 등 니토는 제국의 힘과 황실의 권위에 걸맞은 주얼리를 선보였다. 그의 특출한 미감과 세공 기술은 교황 비오 7세에게 수여한 교황관의 아름다운 디자인을 본 조세핀 황후가 그 자리에서 니토를 황실 주얼리 전속 세공사로 임명했을 정도. 이때부터 니토의 작품은 황실의 상징처럼 인식되었고, 유럽 전역에서 가장 유명한 보석상으로 빠르게 자리매김했다.
니토 별세 후 가업을 물려받은 아들 프랑수아 르뇨(François-Regnault)가 방돔 광장 15번지(현재는 리츠 파리 호텔이 자리하고 있다)에 최초로 주얼리 메종을 열었고, 1885년부터 조세프 쇼메(Joseph Chaumet)가 경영권을 이어받으며 그의 이름을 따 ‘메종 쇼메’로 불렸다.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주얼리를 통해 벨 에포크 시대의 화려함을 완성한 그는 1907년 메종을 방돔 광장 12번지에 위치한 보다르 드 생트 제임스(Baudard de Sainte-James) 호텔로 이전했다. 240주년을 맞은 2020년 리노베이션을 거친 오늘날 방돔 광장 12번지의 쇼메 하우스는 최고 장인들의 작업 공방과 부티크로 사용되는 동시에 메종의 유산을 살펴볼 수 있는 상징적인 건물로 남아 있다.
주얼리는 언제나 사람을 매혹한다. 그러나 반짝인다는 이유만으로 그 가치가 동등한 것은 아니다. 극적인 시작과 성장을 겪은 쇼메가 전설적인 여러 주얼리 하우스의 등장에도 명성을 유지하면서 현대적인 메종으로 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결국 독보적인 헤리티지다. 유럽 주얼리 역사에서 쇼메의 명성을 알 수 있는 대표 아이템은 티아라다. 18세기 상류층 여성이 파티나 결혼식처럼 공적인 행사에 참석할 때 머리 앞쪽에 쓰는 반원형 주얼리로, 착용자의 지위나 권력, 부를 보여주는 요소였기 때문에 당대 여성에게 티아라가 갖는 의미는 생각보다 대단했다. 쇼메는 1780년부터 지금까지 3,500여 개의 티아라를 제작해왔다. 단순히 이 숫자만 놓고 봐도 얼마나 공고한 유산을 지니고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티아라에 대한 자부심은 그 형태를 그대로 사용한 브랜드 심벌 그리고 방돔 광장 12번지 본사에 있는 ‘살롱 데 디아뎀(Salon des Diadèmes)’에서 엿볼 수 있다. 살롱 벽을 장식하는 수백 개의 니켈 실버 티아라 모형은 메종의 찬란한 역사를 대변한다. 쇼메 티아라는 타 브랜드와 엄격하게 차별화된 제작 기법을 바탕으로 한다. 간단하게는 니켈 실버로 모형을 만든 다음, 머리 형태와 착용 방식에 맞춰 디자인을 수정하는 방식으로, 하나의 티아라가 완성되기까지 약 2~6개월의 작업 기간이 소요된다.
쇼메 헤리티지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를 하나 더 꼽자면 바로 조세핀 황후다. 쇼메를 황실 주얼러로 발탁한 조세핀 드 보아르네(Joséphine de Beauharnais)는 새로운 권력의 황후로서 패션을 활용하는 데 놀라운 재능을 지닌 여성이었다. 권력의 상징이자 눈부신 여성미를 대표하는 티아라를 패션으로 승화시킨 것도 그녀의 아이디어였으니 말이다. 조세핀이 첫 번째 공식 행사에서 착용한 밀 이삭 티아라는 세련된 황후의 모습을 연출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시대를 앞선 18세기 패션 아이콘은 200여 년 동안 쇼메 주얼리에 무한한 영감을 주고 있다. 나폴레옹 1세가 그녀를 위해 만든 프러포즈 반지 ‘투아에무아(Toi et Moi, 너와 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듀오 에떼르넬(Duo Éternel)’ 반지와 조세핀이 사랑했던 수국을 모티브로 한 ‘호텐시아(Hortensia)’ 컬렉션 등이 그 증거다. 그리고 2010년, 메종 최초의 고객이자 뮤즈였던 조세핀 황후는 그 이름을 품은 컬렉션 ‘조세핀(Joséphine)’으로 다시 태어나기에 이른다. 미학적 요소가 담긴 조세핀 황후의 주얼리는 패셔니스타의 화려한 감각과 황후의 우아한 품격을 모두 지닌 것이 특징. 특히 백로 깃털을 활용한 머리 장신구 아그레뜨에서 영감을 받은 ‘조세핀 아그레뜨(Joséphine Aigrette)’ 라인은 주얼리에 대한 조세핀 황후의 안목을 ‘손가락 위의 왕관’이란 컨셉으로 풀어냄으로써 메종의 유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이처럼 쇼메 주얼리는 과거의 인물이면서도 매우 현대적인 조세핀 황후의 대담하고 자유로운 영혼을 언제나 기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