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일까?’ 허술한데 설렌다
여름이다. 청량하고 건강한 청춘 로맨스가 잘 어울리는 계절이다. 이 장르의 팬들이 이번 시즌 주목할 드라마는 <우연일까?>다. 여러 아쉬움이 들지만 그것을 보완할 결정적 매력도 있는 작품이다.
<우연일까?>는 고교 동창 이홍주(김소현)와 강후영(채종협)이 성인이 되어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과거 홍주의 단짝 김혜지(김다솜)가 후영을 좋아했다. 정작 후영은 혜지의 메신저 노릇을 하는 홍주에게 관심이 간다. 홍주도 후영에게 설렌 순간이 있지만 혜지와의 의리 때문에 자기 감정을 무시한다. 그때는 홍주가 로맨스 소설 작가 방준호(윤지온)에게 푹 빠져 있기도 했다. 그렇게 엇갈린 채 한 시절이 마무리되었다.
연락이 끊긴 동안 홍주는 작가 방준호와 연애를 하다가 아프게 헤어졌다. 아직 후유증을 겪고 있는데 오래 꿈꿔온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려면 방준호와 일해야 한다. 후영은 미국에 살다가 한국 출장을 와서 홍주와 마주친다. 마침 두 사람은 한 건물에 살고, 회사도 가깝다. 우연한 만남이 반복되면서 홍주와 후영은 과거에 대한 기억을 하나둘 떠올린다.
앙숙 사이 동창이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난다는 스토리, 현재 사건 전개와 병행해 과거 로맨스의 순간을 복기하는 연출은 김다미, 최우식 주연 드라마 <그 해 우리는>(2021)을 연상시킨다. <우연일까?>는 현재와 과거의 연결이 그 작품만큼 매끄럽지는 않다. 하이틴 로맨스와 직장인 남녀의 감정을 오버랩시키려니 아역을 별도로 두기보다 중간 연령대의 배우들이 두 타임라인을 모두 소화하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채종협의 경우 성인 파트에서 종종 이질감이 든다. 이건 배우의 문제만은 아니고, 캐릭터 자체가 워낙 설정이 과하다.
후영은 과거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딴 수재였고, 현재는 고액 자산가를 관리하는 금융 회사의 임원이다. 어머니가 회사 주인이다. 도련님 같은 면모와 유능한 직업인의 카리스마가 모두 필요한 역할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의 후영 캐릭터는 전자에 기울어 있다. 한국 로맨스 판타지가 엘리트 부유층을 묘사할 때 드는 고질적 느끼함이 있는데, 설정에 어울리지 않는 소박한 로케이션과 세트, 아련하고 부드러운 조명 때문에 이 캐릭터가 더욱 공허하게 느껴진다.
직업 관련 묘사가 청춘물의 중요 셀링 포인트가 된 요즘 한국 드라마 추세와 비교하면 고액 자산 관리사, 애니메이션 감독 등의 직업을 피상적으로 묘사하는 대목도 아쉽다. 일부 조연의 오버액팅도 피로감을 준다. 남주가 연애를 포기하고 미국으로 돌아가려는데 하필 타이밍 좋게 여주가 사고를 당한다거나, 다리가 부러져 계단을 기어다니다가 남주에게 ‘공주님 안기’를 당한 여주가 구남친이 나타나자 갑자기 뚜벅뚜벅 걸어 다니는 장면처럼 지나치게 편리하거나 허술한 대목도 많다. 전반적으로 만듦새가 좋은 드라마는 아니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는 자주, 가슴 설레는 로맨스의 순간을 선사한다.
똑똑하지만 사랑에 서툴고, 대부분의 타인에게 무례한 후영은 홍주에게만은 수시로 애정을 표현한다. 한편 홍주는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앞뒤 안 재고 돌진하면서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무심한 타입이다. 그래서 후영의 명백한 애정 표현은 미끄러지고 튕겨 나간다. 드라마는 이들이 함께한 장면을 홍주, 후영, 혹은 제3자로 시선을 바꿔서 다시 보여주곤 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 마음을 감추기 위해 한 행동, 그 때문에 상대에겐 의미 없이 스쳐 간 순간, 그 순간 사랑하는 이의 기억에 각인된 상대의 표정 따위가 아릿한 공감을 일으킨다.
시원시원한 전개도 매력이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사소한 오해로 오래 번민하지 않는다. 모두 사랑을 향해 직진하는 타입이기도 하다. 혜지가 중간에 끼는 바람에 주인공들의 연애가 꼬이긴 했지만 후영의 마음을 알고 나서 혜지는 선선히 그들 관계의 조력자가 된다. 4화에 이미 후영은 홍주에게 대놓고 사랑 고백을 시작했고, 키스까지 시도한다. 아직 혜지가 그를 좋아하는 줄 아는 홍주가 “끼 부리지 말라”고 부탁할 정도다. 홍주의 구남친 방준호가 계속 질척거리고 후영의 어머니 백도선(김정난)이 한국에 도착하면서 새로운 위기가 닥쳐오지만 주인공들의 성격이 솔직 담백해서 보는 스트레스가 덜할 듯하다. 플러팅이 일상인 혜지의 연애 사건도 잔잔한 재미를 준다.
배우 김소현은 털털하고 사랑스러운 홍주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소화한다. 힘들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충분히 시선을 사로잡는, 트렌디하면서도 노련한 연기다. 그와 더불어 혜지 역의 김다솜, 혜지의 아버지이자 고아인 홍주를 가족처럼 아끼는 김복남 선생 역의 김원해가 자칫 솜털처럼 가벼워질 뻔한 드라마에 안정감을 더한다.
홍주가 구남친과 일하기 싫다고 감독 입봉 기회를 차버리려 할 때, 애니메이션 회사 사장 배혜숙(윤정희)은 웅변한다. “현실엔 아름다운 사랑 따윈 없어. 하지만 우린 누구다? 진실한 환상을 만들어내는 창조자. 다들 사랑 따위 할 시간에 일하자고, 일!” <우연일까?>는 우리의 옥시토신을 즉석 충전해줄 또 한 편의 진실한 환상이다.
<우연일까?>(tvN)는 총 8부작으로, 7월 22일부터 월·화 오후 8시 40분에 방송되고 있다. 스트리밍은 U+모바일tv, 시리즈온, 티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