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이 이곳에서는 가능하다
‘휴가’. 그러니까, 쉰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휴가를 떠나서도 결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때로는 더 정신이 없어요. 비싼 교통비와 숙박비를 생각하면 한 군데라도 더 들러야 할 것처럼 마음이 급해지고 거의 자동 반사적으로 곳곳에서 스마트폰을 들게 되죠. 아침 7시부터 조식 뷔페를 먹기 위해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야 하고 잠시 누워 있을 때조차 인스타그램을 체크하느라 바쁩니다. 오죽하면 ‘쉬는 건 집에 돌아와서부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요.
얼마 전 떠난 제주에서 아주 오랜만에, 제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산들바람과 빛과 그림자로 가득 찬 공간에 둘러싸여 그냥 가만히 있었습니다. 이건 특별한 경험이 아닙니다. 제주의 게스트하우스 ‘탈로 제주’를 방문하면, 누구나 아주 평범한, 그래서 더 소중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예요. 탈로 제주는 북적이는 번화가나 화려한 리조트 밀집 지역이 아니라 애월 한 동네에, 흔한 동네 슈퍼 하나 없는 아주 조용한 곳에 자리 잡고 있어요. 바로 옆에는 마을 회관이 있고 돌담이 있는 제주식 가옥이 가득한, 평범하기 그지없는 제주의 어느 마을이죠.
탈로 제주는 전통 제주 구옥을 리모델링해 만들었습니다. 툇마루, 상방, 큰 구들방, 정지 같은 토박이 제주 옛집의 특징은 그대로 살린 채 ‘북유럽의 아름다움과 지혜’를 구석구석 채워 넣었어요. 들어서자마자 알바 알토와 브루노 맛손의 가구와 조명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이 아늑한 공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 건 바로 그 안에 완벽하게 어우러진 테클라(Tekla)의 직물 제품입니다.
최근 탈로 제주는 코펜하겐에서 출발한 홈웨어 브랜드 테클라와 함께 새 단장을 마쳤습니다. 탈로 제주의 인스타그램에는 “이부자리를 비롯하여 이곳에 마련한 모든 테클라 제품은 코펜하겐 본사의 크리에이티브 팀에서 탈로 제주 공간과 어울리는 구성으로 골똘하여 짠 것들입니다. 그이들이 꾸준히 내놓는 편안하고 질 좋은 제품과 사려 깊은 빛깔 그리고 그것들을 다채롭게 구성하여 선보이는 아름다운 삶꼴은 오늘날 특히 돋보이는 솜씨입니다”라는 소개말이 적혀 있습니다.
고운 색깔의 침대보와 보송보송한 수건, 포근한 잠옷, 보는 것만으로도 따스한 모헤어 담요… 이런 작지만 아름다운 물건이 일상 곳곳에 놓여 있다는 건 정말이지 확실한 안정감을 줍니다. 밖에서도 입고 싶을 만큼 예쁜 앞치마는 요리라는 행위 자체의 만족감을 높여주고 설거지를 마치고 손을 탁탁 털 때 부드러운 색의 행주가 곱게 접힌 모습을 보면 마음 한구석까지 개운하죠.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다’는 말은 이곳에서는 진리입니다. 테클라와 탈로 제주의 공통점은 미학적으로 아름다운 무언가가 우리 마음에 주는 휴식일지도요.
그리고 테클라와 탈로 제주는 같은 삶의 방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보낸 1박 2일이 바로 그들이 지향하는 ‘삶의 꼴’이죠. 제주 댓잎이 들어간 테클라의 차를 마시고 책을 읽거나 대화를 나누면서 아주 고요하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딘가로 떠나온 것 같지 않고 집에 있는 것 같지만, 묘하게 마음이 평화로운 상태에서요. 다음 날 아침엔 조식 뷔페에 대한 부담 같은 것 없이 느긋하게 일어나 직접 요리해 아침을 간단히 먹었습니다. 평소엔 귀찮아서 배달 음식을 주로 먹지만, 문 앞에 예쁘게 배달된 신선한 과일과 채소, 요거트와 달걀 바구니를 보니 음식을 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일었습니다.
창밖의 꽃이나 하늘을 보고 날이 좋으면 산책을 하며 비가 내릴 땐 빗소리를 듣기만 해도 이상할 정도로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시간이 느리게 가는 기분이었는데, 그 생경한 느낌이 퍽 좋았습니다. 건축을 설명할 때 으레 등장하는 문장인 ‘자연을 건물 안으로 끌어들인다’의 진짜 의미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니까요. 전통 한국 건축에서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인 ‘차경’을 적극 활용하기 위해 커다란 창 여러 개가 집 안 대부분의 공간을 휘감고 있어 계절감이 생생하게 전해집니다. 테클라 컬렉션 역시 대부분 유기농 재료로 구성되어 있으며 평온한 색감이 말 그대로 자연스럽습니다. 자연 어딘가에 툭 놓여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아요.
모든 것이 천천히 흘러가는, 일상에 가까운 느슨한 나날. 작가 제니 오델은 책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에서 그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무기력이 아니라 “곧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주고 다른 체제에서 다른 무언가를 도모하기 위해 현재의 체제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정의했습니다. 결국 제니 오델이 말하고 싶었던 건 진정한 의미의 휴식일지도 모르죠. 테클라로 단장한 탈로 제주에서 보낸 시간을 요약하자면, 쉼과 숨입니다. 휴식하며 생각하고 호흡하며 나를 들여다보는 일. 업무와 빡빡한 일정은 잠시 잊은 채,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경험에 둘러싸인 시간. 올여름 가장 평온하고, 무탈하며, 조용하던 1박 2일이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우리 모두가 원하는 삶이죠.